경제적으로 어려운 납세자를 위해 도입된 고충민원제도가 고액 사건의 환급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취지의 제도가 잘못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인영 국회의원(민주당, 서울 구로갑, 기획재정위원회)은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 ‘2010년~2013년 고충민원 시정액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4년간 고충민원 통해 받아간 고액사건 환급액 1900억원에 달해 영세납세자를 위한 국세청의 ‘고충민원제도’가 고액 사건의 환급통로로 악용되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납세자 돕는다는 원래 취지 살리도록 제도의 운용실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10월21일 밝혔다.

‘국세기본법’에서는 과세당국이 납세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전부터 세금납부 이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납세자가 당국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거나 세법을 잘 알지 못하는 납세자에게 그러한 제도는 ‘그림의 떡’. 바로 이렇게 어려운 사정에 처한 납세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가 고충민원이다.

이는 다른 불복제도들과는 달리 국세부과제척기간(부과일로부터 5년) 만료 30일 전이라면 언제든지 서류 한 장만으로 쉽게 신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리기간도 짧다는 장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에 이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그 성격을 잘 말해준다.

바로 이러한 제도의 취지 때문에 고충민원제도에는 다른 불복절차들과는 달리 관할 세무서장이 직권으로 시정가능한 부분이 존재하며, 따라서 고충민원의 인용률은 평균 76%로 다른 불복절차들의 인용률 3~40%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충민원제도가 실제로는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이인영 의원은 “‘2010년~2013년 고충민원 시정액 현황’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제기된 총 3만2741건의 고충민원 중 2만4987건이 받아들여져 총 2312억원의 세액이 환급됐다”며 “이러한 민원의 대부분(제기건수 기준 92.9%, 시정건수 기준 94.5%)은 3000만원 이하 사건들로, 언뜻 보면 고충민원제도가 서민을 위한다는 애초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금액 기준으로 보면 전체 감세액의 82.2%인 총 1902억원 가량이 3000만원이 넘는 고액 사건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이어 “보통 서민들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3000만원 이상의 세금을 낼 일이 없는 것이 현실임을 떠올리면 서민을 위한다는 고충민원제도가 사실상 부자들을 위한 환급통로로 악용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른 한편,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고충민원제도를 통해 상당한 세액을 환급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며 “특히 이들 중에는 고액 환급자가 많은데 2010년부터 2013년 상반기까지 3000만원이 넘는 납세고지서를 받은 법인 365개가 총 980억원이 넘는 세액을 환급해 갔고 이는 전체 환급액의 42.3%에 이르고 있어 고충민원제도가 고액의 납세의무를 진 법인을 위한 제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인영 의원은 “제도가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나 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며 “법인이 고충민원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상으로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법인이 경제적 약자를 위한 제도인 고충민원을 이용해 3년 반 동안 1000억원 넘게 세액환급을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이 의원은 또 “다른 구제절차에 비해 요건이 느슨한 고충민원을 고액 자산가들이나 법인들이 정상적인 불복절차를 통해서는 해결하기 힘든 사건의 환급통로로 악용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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