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기열 보성소방서 소방팀장
공직자에게 청렴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덕목임에 틀림없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과 저녁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여지없이 공직자, 사회지도층 비리사건이 나온다. 자녀들과 함께 보기에 민망할 지경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부패 공화국인가? 공직자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절대로 가족과 주위 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그러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수없이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스스로를 엄히 다스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언제 어떤 방법으로 부패의 유혹이 나에게 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자녀가 읽고 있는 조선시대 역사만화에 영조 때 김수팽이란 청백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를 지낸 김수팽은 ‘전설의 아전’이다. 청렴하고 강직해 숱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호조 판서가 바둑을 두느라고 공문결재를 미루자 김수팽이 대청에 올라가 판서의 바둑판을 뒤엎어 버렸다. 그리고는 마당에 내려와 무릎을 꿇고 대죄를 청했다. 그는 “죽을 죄를 졌으나 결재부터 해 달라”고 간청하니 판서가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또 김수팽이 숙직하던 밤, 대전 내관이 왕명이라며 10만금을 요청했다. 이때도 그는 시간을 끌다가 날이 밝아서야 돈을 내주었다. 야간에는 호조의 돈을 출납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관이 사형에 처할 일이라고 엄포를 놓았으나 영조는 오히려 김수팽의 행위를 기특히 여겼다.

김수팽의 동생 역시 아전이었다. 어느 날 그가 아우의 집에 들렀는데 마당 여기저기에 염료통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염색 업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는 아우의 말에 김수팽은 염료통을 모두 엎어버렸다. “우리가 나라의 녹을 받고 있는데 부업까지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는 것이냐” 이 같은 김수팽의 질타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청빈한 정신이 담겨 있다. 조선의 관료들은 ‘사불삼거(四不三拒)’를 불문율로 삼았던 것이다.

재임 중에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四不)는 ▲부업을 하지 않고 ▲땅을 사지 않고 ▲집을 늘리지 않고 ▲재임지의 명산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꼭 거절해야 할 세 가지(三拒)는 ▲윗사람의 부당한 요구 ▲청을 들어준 것에 대한 답례 ▲경조사의 부조다. 

부정을 청탁하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니 걱정하지 말라며 금품을 제공한다. 그러나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며, 내가 알고, 니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겠는가? 일찍이 중국 후한 ‘관서공자양백기’라 불리는 양진이 말한 바 있듯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공직자라면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2016년 6월8일
주기열 보성소방서 소방팀장(소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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