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영 한양대학교 방재안전과 특임교수
기원전 3세기 무렵 로마와 카르타고는 118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포에니 전쟁’을 치뤘다. 이후 로마는 승전국이 돼 강력한 로마제국으로 발전했고 전쟁에서 진 카르타고는 멸망하게 됐고 살아남은 시민마저 아프리카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전쟁을 치루는 동안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는 전쟁의 승패를 가른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카르타고는 전쟁에 진 장군을 문책하고 책임을 지게 한 반면, 로마는 문책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줘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로마는 전쟁터에 나갈 새로운 장군이 없어서 패장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니다. 비록 전쟁에서 졌다고 할지라도 그 패배의 경험도 소중하게 여겼으며, 패배가 장군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장군을 임명한 원로원의 구성원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이로 인한 양국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패장에 대한 카르타고의 문책은 유명한 한니발 장군도 전쟁의 일선에서 밀려나게 만들었고 전쟁을 이끌 장군들은 점점 부족해져 갔다.

반면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오랜 전쟁기간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장군들의 능력도 함께 성장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대를 이어 전쟁에 나서며 경험을 쌓아온 스코피오 장군이 한니발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의 하나이다.

실패한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성장하기를 기다려주는 로마의 이런 문화는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함께 훗날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기까지 막강한 군사력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 해경의 해체를 선언하고 같은 해 11월 국민안전처를 출범시켰다.

새롭게 생긴 국민안전처는 전 안전행정부의 안전전담조직과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을 통합해 거대조직으로 꾸려졌다.

하지만 2014년 당시 국민안전처의 출범은 그 이전 소방방재청과 해경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국민의 생명과 맞바꾼 그 노하우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실패에 대한 책임만 묻는 징벌성 조직개편이라는 시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2014년 국민안전처 출범 당시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사람 중 한명이다.

그러한 외부의 비판적인 시각 속에서 국민안전처는 국가의 존망을 다루는 위기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했으며, 워낙 이질적인 조직들인 소방과 해경을 인위적으로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다 보니 효율적인 재난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조직 내외부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지난 2년 몇 개월간 국민안전처는 속된말로 ‘쥐어 터지면서 성장’하고 있다.

조금씩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던 안전과 소방, 해경이 함께 모여 재난안전이 통합돼 다른 업무도 이해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현재 시스템을 보면서 이런 시스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성격을 가진 기관들이 같은 부처 소속으로 있으면서 현장 중심의 재난대응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재난안전·소방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해경분야까지 포용하는 등 통합재난관리의 전문성을 높이게 되면, 보다 더 신속하고 정확한 재난상황판단과 현장대응이 가능해지고, 재난관리책임기관 간 협업체계가 강화돼 더 큰 재난피해를 줄이고, 국민의 소중한 인명구조 시간을 앞당기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위기관리 매뉴얼을 복구ㆍ보완하는 등 국가 재난관리체계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소방과 해양을 국민안전처로부터 독립시키고 인력을 충원해 현장대응조직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청와대 국가안보실 직속으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복원시키고 이명박 정부 이후 폐기됐던 국가위기관리 매뉴얼도 최근 재난 유형을 반영해 복원하겠다고 언급했다.

재난관리 실패의 책임을 물어 소방방재청과 해경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로 바뀐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았다.

물론 국민안전처가 아직은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는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져 흩어진 국민안전처의 공무원들의 노하우와 자부심은 과연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궁금하다.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래로 길지도 않은 시간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참 많이도 바뀌고 있다.

당초 건설부에서 담당하던 안전관련 업무의 일부를 1975년 내무부의 소속기관으로 설치된 소방국이 담당한 이후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 안전행정부를 거쳐 국민안전처가 됐다가 다시 새로운 기관에서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앞서 말한 카르타고를 다시 한번 떠올릴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진 장수를 문책하고 책임지게 하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한 카르타고와 재난관리실패의 책임을 물어 계속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모습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끼게 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를 보면 1947년 소방청이 만들어진 이래 아직까지 재난관리의 노하우를 이어오며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고, 미국 또한 1978년 페마(FEMA)가 생긴 이후 소속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명칭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역시 재난관리의 실패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한 경험까지도 국가의 자산이라고 여기고 기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잘 유지시켜오고 있다.

재난안전 분야에 있어 실패의 노하우는 어떠한 경제적 지불을 통해서도 할 수 없는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다.

칼을 들어 조직을 개편하고 문책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안전처 출범으로 인해 강화된 현장중심의 재난대응체계와 통합적 재난관리로 거듭나고 있는 ‘공’은 고려하지 않고 ‘과’만을 생각해 모든 것을 개편한다고 하면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안전처를 난도질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가장 가까이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방재안전직렬 공무원들의 대우를 개선하고 그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宋)나라의 어느 농부가 자기 논에 심은 벼의 모가 빨리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를 하나하나 뽑아서 크기를 높게 했더니 결국 모가 모두 말라 죽었다고 한다.

빠른 성과를 보기 위해 무리하게 다른 힘을 더하게 되면 도리어 그것을 해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진정으로 국민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보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2017년 5월31일
송창영 한양대학교 방재안전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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