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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난안전대책’ 선진국 수준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2018년 02월 05일 (월) 18:44:23 윤성규 기자 sky@safetoday.kr

   
▲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연이은 다중이용시설 화재로 대규모 인명피해 상황을 접한 국민이 당혹하고 참담해 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재발방지책 마련을 위한 화재안전TF 구성을 지시했다.

총체적 안전난국을 극복해 나가려면 소나기를 피하고 언 발에 오줌 누기 대책이 아닌 현행 안전관리시스템의 민낯을 까발리고 근원적 처방이 절실한 시점에서 합당한 조치로 판단된다.

그간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안전 관련 국가와 지자체 조직 확충, 법·제도 개선, 매뉴얼 개정, 재난훈련 강화 등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화재, 선박 전복, 산업재해 등이 감소되지 않고, 재난발생시 초기 대응부실 - 피해발생 보상 - 재발방지대책 발표하는 모습 또한 변한 것 같지 않다.

이러한 국면을 지켜보며 불안해하던 국민은 최근 제천, 밀양 화재로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감 토로와 함께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국민이 정부에게 최적의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 운영하라는 미션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향후 개선방향은 새로운 방안을 찾기보다 현행 안전시스템의 결함, 미비점, 취약성, 사각지대를 촘촘하게 분석 보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현행 법·제도, 시스템의 외형은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안전조직 개편, 법·제도 개선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 그간 정부의 위기관리조직은 객관적인 위협(험)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상황논리에 따라 신설, 축소, 폐지가 된 정황이 적지 않다.

지금도 여야는 안전법안처리는 뒷전이고 네 탓 공방만 일삼으며 논쟁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이들이 여야 협상과 합의로 설계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고, 그 폐해는 국민에게 전가되는 구조만 고착될 뿐이다.

그 사례로 국민안전처를 창설하고 뿌리도 내리기도 전에 폐지하고 기능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로 이관시켜 행정력과 예산낭비 그리고 업무혼란 초래했다는 비판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정부는 정무적 판단을 배제하고 오직 위협요인과 취약성만 고려해 구조적, 비구조적 대책 마련에 매진하고, 정치권도 법제도 보완 개선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둘째, 정부는 후진적 국가주의(Statism) 주술(呪術)에서 탈피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국가는 여전히 우월적인 권력 조직체로서 위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정보화, 과학화, 민주화 등의 영향으로 모든 사회영역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변화됐다. 이는 곧 과거처럼 개인이 국가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권리와 민주주의 가치를 주장하는 시민사회와 개인의 영향력이 증대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고 있는 4차 산업시대 도래와 정책수행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안전대책은 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안전전문가 그룹, 시민사회, 자원봉사자 등과 함께하는 민관협력(Governance)을 통해 종합적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자체의 재난안전관리 주체로서 역할 기능 발휘 여건을 보장해 줘야 한다. 왜냐하면 애당초 안전관련 법·제도 중앙집권적 안전관리에 초점을 두고 설계됐으며, 담당인력 전문성 부족, 쥐꼬리 안전예산 등 열악한 업무환경으로 인해 자율적, 독자적 사업추진은 고사하고 중앙정부에서 규정한 업무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결국 재난발생시 대응복구과정에서 손발이자 실핏줄인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지원요청을 하고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제 취지에 부합되도록 중앙정부의 조직편성 권한이양, 국가사무 재분류·조정, 그리고 세제개편 통한 지방재정 확충 등에 필요한 법·제도적인 개선으로 지자체가 명실상부한 지역안전관리 주체로 역할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여건제공이 시급하다.

또 시, 군, 구의 건축물 인·허가 및 사용승인, 소방안전시설 점검 등 안전현장 접점 인력보강도 도외시해선 안 될 과제이다.

넷째, 재난시 국민에게 일정부분 자기보호(Self-protection)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5조(국민의 책무)는 내용이 선언적이고 포괄적일 뿐만 아니라 구속력도 거의 없는 유명무실한 규정이다.

따라서 재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Stakeholder)인 국민 개개인에게 자기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구책 강구의무를 부과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이나 민간기업이 대피시설, 안전물자·장비 등을 확보·운영할 경우 세금감면, 예산지원 등과 같은 인센티브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 생애주기별 안전교육을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상별로 교육훈련은 체험위주 절차숙달에 중점을 두고 이수하게 함으로써 안전수칙준수 생활화와 안전문화를 정착을 통해 ‘안전불감증’이라는 용어를 추방해야 한다. 

끝으로 공공성(公共性)의 회복이다. 단기간에 고도의 산업화와 압축 경제성장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반면에 탐욕적 이기주의와 공공성 훼손도 수반되어 왔다. 즉 공동체 삶에 필요한 공공성 훼손으로 시민안전도 위협받게 된 것이다.

즉 안전의무규정을 준수하는 것보다 불·편법의 대가인 벌금을 내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이들에게 안전은 불편하고 귀찮은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셀프 점검, 건축물 증개축, 스티로폼 단열재 사용 등 안전을 위협하는 일들이 일련의 화재로 떠들썩한 이 순간에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회복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치학자 핼퍼린(Morton H. Halperin)은 조직의 임무달성 여부는 조직 내부의 지배적 집단이 그 조직의 임무와 역량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국민은 정부가 작금의 대형화재 후속조치로 안전관리체제를 제대로 구축해서 다시는 이런 불행스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정부는 조급하게 서두르다 졸속을 내놓지 말고 현행 안전관리체제의 한계 즉 결여, 미비, 간과됐던 사항과 미래 첨단 IT, AI 환경까지 고려한 최적의 국가안전 백년대책을 설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의 ‘재난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한다.

2018년 2월5일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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