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국회의원
지난 201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18개 시도 소방본부가 주문한 550건의 구조‧구급‧화재진압‧소방관 개인보호장비 등 각종 소방장비가 납품 지연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도, 계약이행 능력 부족, 업체 사정 등을 이유로 한 조달계약 해지‧파기한 사례도 48건이나 됐다.

납품 문제를 발생시킨 업체 598건을 전수조사해 봤더니, 약 14%(83건)가 기념품이나 문구용품, 접착제, 정수기, 동물사료, 장의‧장묘 등 소방장비와 동떨어진 물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장비 납품 능력이 떨어지는 비전문기업들의 무분별한 입찰 참여로 소방장비의 공급지연이 잦아지면서 국민의 생명‧안전은 물론 소방공무원들의 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행정안전위원회)은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6년간(2015년 ~ 2020년 7월) 소방장비 납품지연 및 계약 해지·파기 사례’를 분석한 결과, 납품지연이나 계약 해지‧파기 사례가 가장 많았던 곳은 경기소방재난본부로 총 87건(납품지연 82건‧계약해지 및 파기 5건)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10월11일 밝혔다.

경기에 이어 △서울(납품지연 63건‧계약해지 및 파기 3건) △강원(42건‧3건) △전북(40건‧4건) △울산(42건‧1건) △경북(39건‧4건) △충남(42건‧1건) △광주(39건‧3건) △제주(33건‧4건) △충북(31건‧3건) △전남(26건‧3건) △대구(24건‧2건) △부산(15건‧0건) △인천(11건‧2건) △세종(8건‧2건) △경남(7건‧2건) △대전(5건‧3건) △창원(1건‧3건)이 뒤를 이었다. 

소방청이 제출한 사업자등록증 및 조달시스템에 등록된 업체 형태로 봤을 때, 전체 598건 중 83건(14%)이 소방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비전문업체들이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화재시 피난 유도 및 탈출구 확보를 위해 설치하는 라이트라인 15종의 납품기한을 46일 지연시킨 업체는 기념품, 교구 문구 도매업체였고, 대구소방안전본부에 화생방‧대테러 구조장비를 납품기한에서 169일 늦게 납품한 업체는 가전제품 및 부품 등을 취급하는 도소매업체였다.

탐색용 구조장비 납품을 끌다가 계약해지 당한 업체는 의류‧침구류‧컴퓨터‧통신용품 제조업 도매업체로 등록된 곳이었고 산악용 구조장비를 70일 늦게 납품한 곳은 인력용역업체였다. 

광주소방본부가 발주한 119특수구조단 구조장비를 64일 지연 납품한 업체는 열쇠‧도장‧문구용품 도소매업체였다. 계약일(60일) 내 또 다른 119특수구조단 구조장비를 납품하지 못해 스스로 계약포기서를 제출한 곳 역시 도장‧미장‧주방기구 업체로 등록된 업체였다.

충북소방본부가 발주한 건식‧습식 잠수복 130벌을 납품기한에서 247일, 수중영상탐지기를 332일 늦게 납품한 업체는 각각 소프트웨어, 장의‧장묘업체였다. 경북소방본부의 산악구조장비를 60일 지연납품한 곳은 도서‧사무용품업체였고, 제주소방본부가 발주한 현장지휘텐트 5점은 의료기기 도소매업체가 낙찰받아 납품기한을 132일 지나 납품했다.

전북소방본부의 경우 총 42건의 납품지연된 물품 중 23건을 접착재, 철물, 정수기, 서적, 사무기기, 의류, 보청기, 청소방역, 포장재, 광고물 도소매업체 등 비전문업체가 낙찰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8개 시도 소방본부 중 납품 지연을 가장 많이 겪은 경기소방재난본부의 소방장비 납품 지연 사례 82건을 분석해 보니, 구급장비 10건, 구조장비 35건, 개인안전장비 20건, 교육장비 7건, 기타 5건, 기동장비(차량) 4건, 통신장비 1건 순으로 납품 지체가 생겼다. 

약속된 납품기한에서 짧게는 하루나 이틀 지연된 사례도 있지만 길게는 195일 납품이 지연된 건도 있었다.

납품이 100일 이상 지연된 사례는 총 8건이었다. 최장 195일을 지연한 장비는 항공EMS장비(항공응급의료장비) 1세트로, 당초 2016년 1월25일 계약해 같은해 5월24일까지 납품하기로 했지만, 구매품목 제품검사·납품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195일 뒤에야 납품했다. 이 업체는 경기소방재난본부에 지연배상금 7900여만원까지 물었다.

고성능소방펌프차 2대는 제조사 제작공정 지연을 이유로 190일이 지연됐다. 다목적삼각구조대, 통화식무전기, 대원위치추적 장비 등을 납품하기로 한 업체는 납품 준비가 지연된다며 154일 뒤에 물건을 건넸다. 소방용 방화두건 2311점을 납품하기로 한 업체는 납품기한(계약일로부터 40일)에서 126일 지난 뒤 약속을 지켰다.

정맥주사마네킹 등 의학교육용 마네킹 납품업체는 4개월(120일) 지난 뒤 납품했다. 동계산악구조복 등 4종에 대한 납품을 하기로 했던 업체는 “납품 준비가 안 되고 있다”며 105일이 지난 뒤에야 납품했다.

소방장비 납기 지연과 계약해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엔 소방장비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비전문업체들의 묻지마 입찰 참여에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조달청 나라장터(국가종합전자조달 시스템)에 입찰 참가자격 등록이 된 업체는 모두 일반 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방장비 납품 계약을 이행할 능력이 안 되는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은 뒤, 납품하지 못하는 품목을 수수료만 받고 하청으로 넘기는 경우가 관행화돼 있다는 게 소방청의 설명이다. 계약자가 납품권을 하청에 양도하는 과정에서 계약일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소방장비는 국내제조업체가 많지 않아 수입품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은데, 장비 수입에 실패한 계약자가 납품기한에 쫓기다 스스로 납품 포기각서를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이은주 의원은 “국민의 생명‧안전보호에 사용되는 소방장비는 무엇보다도 장비의 안전성과 신뢰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비전문업체의 무분별한 입찰참여와 계약자와 납품자가 다른 등의 이유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어도 소방장비만큼은 입찰 참여 업체들의 계약이행 능력 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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