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추정되는 폭설, 폭우, 한파 등과 같은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올해 초 폭설로 인해 많은 피해와 시민불편을 초래한 사례가 있다.  

▲ 정찬권(숭실대 겸임교수·위기관리)
이러한 재난사태가 발생하자 각종 매스컴들은 기상청의 빗나간 기상예보와 행정당국의 늑장대응을 탓하는 내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인력과 장비를 가동하더라도 자연현상을 100% 예측해 대비하고 대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기상관련 기관의 어려움을 이해 하지만 그들을 옹호하거나 면죄부를 주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없다.

다만 국가위기에 대비·대응하는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상청 등 관계기관과 시민들의 의식과 행태는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거 농업기반사회에서는 수요자인 시민들에게 공급자인 국가가 모든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 일방형 행정이 효율적이었다면 자율과 제도가 중시되는 민주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지식정보화·산업화 시대로 일컬어지는 오늘날에는 탈권위와 분권화의 진전으로 국가 통제력의 축소 내지 약화돼 과거와 같은 행정 편의적 업무행태는 이미 설 땅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므로 공급자와 수요자가 분명했던 과거 위기관리행태는 새로운 위기관리 모형(paradigm)으로 변환이 요구되고 있으나 국가위기관리분야는 예나 다름없이 공무원들의 안일한 업무수행 태도와 시민들의 국가 의존적 행태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표적인 공공재(public goods)인 재난 등 각종 국가위기분야도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어 예외 없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늑장대응과 과도한 기회비용을 치르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변화된 안보환경에 부합되게 재난 등 각종 국가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현행 국가위기관리 모형과 매뉴얼을 시급히 개선하고 보완·발전시킬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초 폭설사태를 교훈삼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먼저 시민들이 재난 등 각종 위기시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시 국가차원에서 동원된 것은 물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다 입은 인적·물적 피해와 손해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상과 지원을 해 줘야 한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 일부 법령에 보상관련 내용이 명시돼 있으나 여전히 소극적 개념이고 대부분의 경우 동원된 경우에 한정해 보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법령에 명시돼 있다.

이러한 여건으로는 위기사태시 조용히 있으면 될 일을 공연히 나서서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국민들의 인식을 불식시키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위기관련 법규에 국가에 의한 동원은 물론 자발적으로 위기대응활동에 참여하다 입은 피해와 손실을 적극적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명시해 참여 동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둘째, 체계적인 민-관 네트워크 구축으로 협업(governance)체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체와 시민단체(NGO)그리고 행정기관은 상호 양해각서나 협의서 등을 체결해 위기발생시 행정 관할지역 내에 위치한 시민단체나 기업체의 인적·물적 자산을 활용하고 위기상황 종료 후 행정기관은 이들 업체와 시민단체들의 사용한 비용에 대한 실비정산, 감세(減稅), 기부금 처리 등과 같은 실질적인 보상이나 혜택을 줘 참여한 기업체나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제도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난 등 국가위기는 공직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구성원 전체의 문제이자 이해상관자(stakeholder)라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함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국민들의 의식과 행동 변화를 위해 다양한 홍보와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폭설 후 도심 거리에서 스키와 스노우보드를 타는 일부 시민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인터넷과 TV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색적이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측과 한심하다는 측으로 나눠지는 듯 했다.

한편 경찰은 이러한 행위 적발시 도로교통법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필자는 이러한 행위를 법규에 따라 처벌한다고 해서 해소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므로 유치원에서부터 각급 학교는 물론 직장이나 사회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강요가 아닌 자율적 판단에 따라 내 집 앞 눈치우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구급차나 소방차에 자리 내주기 등을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이 정부의 경보발령이나 위기상황이 예견될 때 관련 매뉴얼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위기를 조기에 종료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오늘날 국가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와 지시가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자율성에 기초한 민-관 상호 긴밀한 협력과 소통이라는 것이다.

지난날에 저지른 과오(過誤)에서 교훈을 얻어 훗날에 일을 사려 깊게 처리해야 한다는 징전비후(懲前毖後)의 의미를 국가위기관리 측면에서 되새겨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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