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겸훈 한남대 교수
10.26재보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선출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0월31일 서울방재종합센터를 방문해 올 여름에 발생해 18명의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에 대해 “천재지변이라고만 보고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비록 표현은 우회적 일지언정 인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석했던 최웅길 서울 소방재난본부장과 이인근 도시안전본부장에게 충분한 예산을 배정할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발 돋음 한다는 미명아래 도시의 외형적 치장에 치중하면서 삶의 기본이 되는 생활안전 분야의 정책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울시가 광화문앞 도로가 빗물로 범람하고 강남 도심이 물에 잠기는 사태와 같은 일련의 자연재난으로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동안 서울시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천재지변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해 왔지만 솔직히 재난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고 재난발생시 관리능력 또한 취약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우면산 산사태와 광화문앞 도로 물난리를 인재로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우면산의 경우 2010년 9월 추석 때에도 이번과 유사한 산사태가 발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올 사고 발생시점까지 완전히 복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올해 장마에 대한 대비도 없었다는 점에서 인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면산이 산사태 위험등급 1등급지역이었으며 산기슭이 주변에 도로가 개설되고 아파트단지와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수많은 절개지가 만들어져있어서 특별한 관심과 주의가 요구되는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지역주민들의 재난에 대한 우려와 안전대책 요구에 귀기우리지 않았다는 점이 두 번째 이유다.

우면산 주변의 개발과 관리를 위해서는 지질학적 특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돼졌어야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 산사태가 발생한 초기에는 우면산이 단순히 흙산이기 때문에 침투수에 의해 대규모 토사가 쓸려 내려와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산사태 이후 산의 속살이 드러나고 나서야 그들은 우면산이 편마암지대임을 알게 됐다. 그간 서울시가 수립한 방재계획들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미뤄 짐작케 한다.

광화문 앞 도로 침수문제는 또 어떤가?. 당시 서울시의 공식적 입장은 100년만에 내린 폭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기실 그와 같은 규모의 폭우는 최근 몇 년간 수차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원인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도시개발에 있어서 기본 중에 기본인 치수와 배수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단행한 청계천 정비사업 결과이다. 다음으로는 오세훈 시장이후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이라는 개발구호를 내세우며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부어 인도를 대리석으로 교체 정비하고 배수로의 외관을 손질하면서 배수기능을 약화시킨 것이 또 다른 원인이다.

이 두 별개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태를 키운 것이다. 건물에 형형색색의 조명들을 밝힌다고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미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라 하더라도 각종 자연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면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없다.

‘세 빛 둥둥 섬’은 어떠한가?. 이 구조물을 보면 그간 서울시가 재난안전에 대해 갖고 있었을법한 저급한 가치와 철학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최대수용인원 6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다중이용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나 구급차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시설이 비록 선박법을 적용받는다 하더라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대규모 시설의 건립하는 과정에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구난구조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과거 서울시의 재난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후보시절에 서울을 ‘공동체가 살아있는 도시, 사람냄새 나는 도시’로 복원할 것과 “시민이 소외되지 않고 주인이 되는 시정”을 펼칠 것을 약속했다.

특히 구체적인 공약내용 중에는 서울을 안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인재가 없는 예방점검은 물론이고 도시개발의 시작 단계부터 재해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대비책을 충분히 강구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박원순 시장은 일찍이 재난관리의 필요성을 잘 알고 실천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우리사회가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종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신념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재난관리연구소를 설립해 적극 지원했었다.

당시 순수 민간연구소에서는 쉽게 접근하기를 꺼려했던 분야이지만 선구적인 안목과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박원순 시장이 서울방재종합센터를 방문해 밝힌 재난관리 분야에 대한 의지는 이명박 정부이후 상당 수준 후퇴한 재난관리 분야에서의 정부차원의 노력과 지원을 복원하고 사회적 차원의 관심이 촉발되는 계기가 되길 고대한다.

이제 우리는 그가 제시한 서울시의 재난안전에 대한 새로운 시대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하면서 느긋하게 지켜볼 일이다.

2011년 11월2일
김겸훈 한남대 교수(전 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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