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5세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또는 사립과 공립여부를 가리지 않고 기관에 다니는 유아들에 대해 의무적으로 5세 교육과정을 적용하게하고 여기에 유아 1인당 재정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교육과 보육의 기능을 물리적으로 통합하고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일괄 적용하는 누리과정은 우리나라 유아교육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누리과정은 유아의 특성에 맞는 특색 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불가능하게 하고, 유아기에 배워야 할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과정도 없이 전격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3~5세 통합학급에서는 누리과정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 한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으며, 공사립을 구분하여 정부 재정지원금에 차이를 두다보니 기존에 공립에 다니던 유아들이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옮겼을 때(사립유치원 1인당 만5세 유아에 대한 지원금은 20만원임) 가정에서 부담하는 자부담경비가 증가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에는 학교체제와 교육과정의 개념이 혼재되어 있어 국민들은 물론 유치원 교사들조차 유아교육체제가 공교육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누리과정이라는 허울을 버리고 형식은 유아학교체제로, 내용은 유아교육과정으로 하면 될 일이다. 초등학교에는 초등교육과정이 있고 중학교에는 중학교 교육과정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의 기만적인 방식으로 유아교육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유아교육을 완전한 무상공교육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유아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누리과정 시행을 전면 재검토하고 유아교육을 완전한 무상공교육으로 전환하라.

첫째, 유아교육이 국가가 책임지는 완전한 무상공교육체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유아교육재정의 확충이 우선되어야 한다.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시설은 민간시설이라 하더라도 영리를 목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공립유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사립 초·중등학교와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교육기관을 비교하면 국공립유치원의 비율이 53.5%를 차지하고 있지만 유아 수 기준으로 보면 국공립기관에서 담당하는 유아 수는 전체 유아의 22.2%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유아교육단계 교육비에 대한 공공지출이 보육과 유아교육을 합쳐 GDP(국내총생산) 대비 0.19%에 불과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평균 0.66%를 공공지출이 감당하고 있으며, 유아 수 기준으로 평균 72%정도의 유아를 공립시설에서 교육하고 있다.

유아교육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교육시스템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재정적 어려움을 이유로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해선 안된다. 현행 민간 유아교육 기관들을 전면 국공립시설로 전환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교원정책과 재정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라.

셋째, 가정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발육과 발달 상태가 전혀 다른 유아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교육과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육계의 합의를 통한 정상적인 유아교육과정을 마련하라.

넷째, 유아교육의 파행을 조장하는 누리과정의 확대적용 계획을 즉각 폐기하고 현재 시행하고 있는 만5세 누리과정은 각 시설과 유아의 조건에 맞게 자율운영이 가능하도록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만3세부터 5세까지 통합학급으로 운영되는 경우에 대하여 누리과정 적용을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교육활동의 내용을 서류상으로 조작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한명의 교사가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3세, 4세, 5세에게 다른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다섯째, 유아 1인당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재정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급식비 및 교사인건비 방식으로 전환하고, 유아교육비 한계를 설정하여 엄격하게 관리하라.

누리과정의 적용여부와 연계하여 유아에 대한 재정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유아교육 현장을 파행으로 몰아갈 뿐이다. 사립시설들은 필요경비 등 다른 명목으로 가정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고, 공립시설의 원아들은 사립시설과의 차등지급을 이유로 급식비 부담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쟁력 하락의 주된 이유가 출산율이 낮기 때문이라면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국가정책의 방향이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유아교육체제의 확립은 보편적 교육복지의 확대로 이어져 국가경쟁력과 나라의 미래역량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만3세~5세 유아교육을 초·중등학교체제와 동일하게 국가가 책임지는 무상공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학제와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유아기 교육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기울어진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물은 없다. 그릇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먼저다.

2012년 3월2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www.eduhop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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