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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리더이자 혁신가
2010년 03월 20일 (토) 18:31:58 윤성규 기자 sky@safetoday.kr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정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의 리더이자 혁신가이다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 도서출판 오늘의책, 저자 김용관

   
지금 정조를 다시 불러낸 까닭은 18세기 후반을 산 정조는 조선의 임금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끝임 없는 암살의 위협과 반대 세력에 둘러싸여 맞서야 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 했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줘야 했다. 아버지를 해하고 자신도 해하려는 세력들에 대한 분노, 죄인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

정조는 분노와 콤플렉스를 리더십으로 슬기롭게 승화했다. 반대 세력도 권력의 한 축으로 보고 같이 가고자 했다. 반대 세력이 강해야 자신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정약용 등 새로운 인재들을 임용해 싱크탱크로서 활용했다.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능력으로 성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정조. 그는 수원을 새로운 상공업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그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유효하다.

분노와 콤플렉스를 통치의 무기로 삼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취임 일성. 이 한마디가 바로 정조의 리더십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이다. 정조는 분노와 콤플렉스를 평생 안고 살았다. 정조의 힘은 바로 이 분노와 콤플렉스에서 나왔다. 분노는 차가운 열정이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승화하면 엄청난 힘이 된다.

할아버지 영조는 52년 집권 기간 내내 천민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둔 콤플렉스 때문에 자식도 죽이고 자신도 무너졌다. 영조의 정치적 실패는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정조는 그 이상한 마음, 분노와 콤플렉스를 평생의 화두이자 통치의 무기로 삼았다.

적이 강해야 내가 강하다

‘적이 강해야 내가 강하다’는 통치철학, 상대도 승(勝)하고 나도 승(勝)하는 상생의 리더십을 구사한 지도자 정조. 오늘날 우리 시대는 너무도 첨예하게 자신만의 이익 때문에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다보니 발전 동력조차 잃어버리고 자꾸 쇠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가 경쟁력은 빈부격차로 발목이 잡혀 있고 기업 경쟁력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이 상생하는 환경이 아닌 작은 것은 모조리 죽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때 우린 정조와 같은 정치지도자 혹은 경영자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정조처럼 정밀하고 예리하면서 치밀하게 시대적 화두를 들고 정치나 경영을 펼칠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주요 내용>

이 책은 정조가 펼친 여러 업적과 정책, 인재 등용과 인사 등을 통해 그를 다시 보고자 했다. 정조의 리더십은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 반대 세력에 둘려 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동궁 시절. 정조는 영조에 이어 임금이 되어 그 동안 쌓인 분노를 폭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히 조절하며 나라를 다스렸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할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같이 갈 상대로 생각했다. 취약한 정치적 기반과 위기를 탁월한 리더십으로 극복한 것이다.

광장에서 백성들과 경제를 논하다

정조는 해마다 백성들과 상인들을 초정해 토론했다.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했다. 흉년으로 어려운 백성의 사정을 직접 듣고, 거대 상인들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고민을 같이 나눴다. 정조의 개혁의 상징 인물은 채제공이다. 반대 세력의 거센 반대에도 채제공을 중용했다.

현란한 화술로 상대를 설득하다

집권 초반부터 정조는 신하들과 논쟁을 좋아했다. 그런 논쟁에서 정조는 억지로 눌러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고대 역사의 여러 예를 들어가며 논리정연하게 설득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신하들과 교감하려 했던 정조에게 화술보다 서신은 더 중요한 정치적 도구였다. 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낸 글에서 “용광로에 철을 부어”라는 글은 강하고 힘차다. 정조는 채제공의 개혁 추진을 위해 용광로를 설치해서 계속 철을 부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지휘자처럼 때론 조각가처럼

정조는 훌륭한 재상들이 나라를 다스리기 바랐다. 정조가 생각한 이상적인 인물은 영의정 김종수, 우의정 유언호 그리고 좌의정에 채제공이었다. 정조는 면밀하게 준비했다. 채제공을 반대를 무릎 쓰고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개혁의 칼은 채제공에게 주고 그것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은 김종수에게 맡기려는 복안이었다. 이렇게 인사에 있어서 인물 하나하나를 긴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검토하고 배치했다. 끊임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내기 위해 튀는 사람은 주의를 주고 너무 소리가 작은 인물은 불러다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본문 중에서>

죄인의 아들, 이것은 콤플렉스다. 정조는 언제나 이 콤플렉스를 껴안고 살아야 했다. 집권하기 전에는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을 종종 받았다. 그래서 대개는 이런 경우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조는 과감하게 콤플렉스를 드러내 스스로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표현했다. 평생 콤플렉스에 갇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그 콤플렉스를 드러내 자신감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다. 정조는 콤플렉스를 드러낸 반면 영조는 그것을 숨겼다. 영조가 콤플렉스를 숨기고 있는 동안 그의 열등감이 결국 사도세자란 비극을 잉태한 것이다. _20쪽

정조는 1781년 정치문제에서는 탕평을 제1원칙으로 삼았지만 경제와 사회문제에서는 개혁을 줄곧 강조했다. 그러나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자는 없었다.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정밀한 그러면서 강력한 인물이 필요했는데 정조 주위로 그런 인물이 딱 한 사람 있었다. 그가 바로 채제공이다. 그러나 채제공은 아직 더 담금질이 필요했다. _120쪽

1783년 그 한 해 정조는 유난히 인재 수혈 방안에 고심했다. 정조가 그해 건진 큰 수확은 바로 다산 정약용을 만난 것이다. 정약용은 1789년 알성시에 급제했으며 이때 정조는 정약용을 사헌부 지평과 사간원 정원이란 언관 자리에 임명했다.

정약용은 또한 사도세자 능 이장을 수월하게 한 ‘배다리’를 만들었고 1792년 수원성을 설계한 설계자이기도 하다. 틈이 나면 이문원에 들려 잠을 자던 정조는 다산 정약용과 무릎을 맞대고 자신의 큰 뜻을 이야기했다. _130~131쪽

정조는 하루에 많은 일을 했다. 부지런한 것은 할아버지 영조를 빼닮았다. 그러나 영조는 매사 토론은 오래하지만 결단력이 약해 일을 성취함이 적었다. 하지만 정조는 치밀하고 매사 매듭짓고 정리하는 것이 강단 있어 많은 일을 추진했다. 그래서 말년에는 눈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자신을 혹사시켰다.

그런 정조는 해마다 5월13일은 자숙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주었다. 1년 가운데 약 1주 일정도 휴식을 겸한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서 장차해야 할 일과 앞으로의 계획들을 면밀히 점검했다._144~145쪽

정조는 강한 적이 있어야 내가 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에게 반대되는 세력 그것도 강한 적을 그리워했다. 정조는 신하들을 길들이는 일로 재위 기간 대부분을 보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신하들을 하나하나 지도했다. 지휘자는 전체 선율을 중시한다. 그래서 어느 한 악기가 튀거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금방 지적할 줄 알았다. _170~171쪽

<저자 소개>

김용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인천에서 대학을 다니며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덕에 졸업은 좀 늦었다. 사회에 나와 선배가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기획과 영업 등 여러 일을 경험했고 <월간축구>, 국내 최초의 실버잡지 <골든에이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월간중앙>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연재했고 <한경리쿠르트>에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지은 책으로는 『생각의 진화』(2010, 국일미디어), 『허균, 길에서 살며 사랑하다 죽다』(2009, 부글북스), 『탐욕의 자본주의』(2009, 인물과사상사) 등이 있다.

<차 례>

머리말

제1장 분노와 콤플렉스

지진이 일어난 날 태어난 아이_15 | 두 개의 어진과 천 개의 모습_26 | 빗물에 잠긴 아버지 묘에 통곡하다_35 | 눈물 자국에 피가 비치다_45 | 가장 비극적인 연극이 시작되다_55 | 수표교 물높이 한 자만 높으면_62 | 장희빈이 뿌린 불행의 그림자들_71 | 글 읽는 소리에 머리가 개운하다_78 | 바늘방석 같았던 14년 세월_85 | 치매, 노환, 전혀 알아듣지도 못해_91 | 영조, 금단을 먹고 장수했을까?_98

제2장 정밀하고 세심하게

세종처럼, 젊은 임금에 환호하는 백성_109 | 아름다운 토사구팽_116 | 18세기에도 양극화와 투기가 최대 화두_123 | 광장에서 백성과 경제를 논하다_132 | 집권 최대 위기, 두 건의 역모사건_138 | 기념일을 꼼꼼하게 챙기는 임금_144 | 현란한 화술로 상대를 설득하다_150

제3장 적에겐 강하게 측근에겐 엄하게

개혁의 상징 인물을 배치하라_161 | 지휘자처럼 때론 조각가처럼_169 | 적은 항상 앞에 두고 싸워라!_174 | 책으로 낚시질하다_180 | 산림 영수와 고집 대결_186

제4장 치열하게 길들이기

24년을 기다린 여인의 원한_201 | 장막을 걷고 나타난 정순왕후_207 | 정순왕후와 벌인 10년 대결_215 | 사소하고 집요한 여인의 증오심_221 | 개혁을 위한 치밀한 전략_228 | 금등을 꺼내 반대세력 설득하다_236 | 싫다는 유언호 억지로 떠메오다_244

제5장 미완의 꿈 사라진 희망

내 인생은 고로여생이다_253 | 한 시대는 가고 사람도 가고_262 | 비밀 어찰과 막후정치에 발목 잡히다_268 | 이가환, 채제공을 이을 인물_279 | 사도세자처럼 의대증이 일어나_288 | 이상한 죽음, 갑작스런 발작?_294 | 1804년 수원의 프로젝트_303 | 분노의 리더십과 아쉬운 역사_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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