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절단되고 부탄가스가 터져 전신화상을 입고 소에 받쳐 허리를 다치고. 구제역 발생 20여일째를 맞는 1월11일 현재. 전국에서 살처분된 소·돼지의 절반 이상이 경기도에서 처리됐다.

경기도 축산인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남몰래 뒤돌아 우는 이들도 있었다. 방역작업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이다.

작년 12월14일 양주, 연천에서 도내 첫 구제역이 발생한 이래 도(道)와 시·군, 소방 공무원을 비롯해 군인, 경찰 7만9000여명이 방역활동에 동원됐다. 하루 6000여명 꼴이다. 이들은 총 417개소의 방역초소에서 밤샘근무를 하는가하면 소·돼지의 배를 가르고 매몰하는 살처분 현장에도 투입되고 있다.

지난 1월8일 현재 도내에서 살처분된 소·돼지는 총 47만7000마리.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닌 공무원의 손에 피를 묻힌 결과다.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은 “피하고 싶지만 내가 아니면 다른 동료가 해야 하기에 책임감 있게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 홍보담당관실 행정7급 공무원인 김종기(40)씨는 연말에 연천군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하필이면 성탄절 전날이었다. 그는 소 35마리의 배를 갈랐는데 애써 키운 소를 살처분 해야 하는 농장주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씨는 “소의 배를 가르는 일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일이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공직자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매몰작업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 김씨는 성탄절 선물을 아들 머리맡에 놔두며 하루빨리 구제역이 종식되기를, 피해를 입은 농가가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기도했다.

시·군 공무원들도 고충이 심하다. 특히 도내 구제역이 발생한 18개 시·군 중 피해가 가장 큰 파주시 공무원들이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최근까지 부상자가 14명이나 속출했다. 하지만 부상당한 공무원들은 오히려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강추위에 살처분 작업에 나섰다가 신종플루와 늑막염에 걸렸다 병가를 받은 파주시 환경보전과 전채원 씨(여·37·환경8급)는 “두 차례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었다. 그 후유증으로 귀에서 소 울음소리가 이명으로 들리는 등 정신적으로 힘들다”면서도 “동료들이 다 고생하는데 이렇게 쉬고 있는 게 너무 죄송하다. 며칠 뒤 복귀하면 당연히 방역현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홍승표 파주시 부시장은 “방역장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사후처리 중 부탄가스가 터져 화상을 입은 직원들도 있다. 살처분에 나섰던 한 직원은 모친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작업장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끝까지 작업에 참여했는데 다음날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며 직원들의 노고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정한 경기도 농정국장도 “구제역 방역 작업이 얼마나 힘든고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일선 공무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겼다. 김 국장은 “구제역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솔선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일선공무원들이 꼭 유념하기 바라며 우리가 아니면 우리나라 축산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명감과 긍지를 지니고 구제역 종식까지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도는 구제역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보이는 피해지역 주민과 살처분 참여 공무원·군인·경찰 등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료를 지난 1월10일부터 시작했다.

도는 이들을 대상으로 PTSD 전수조사를 하고 조사결과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경기도의사회의 협조를 얻어 도내 정신의료기관에서 무료진료를 받게 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도는 작년 말부터 시·군 보건소 및 정신보건센터에 정신건강상담과 사례관리 접수창고를 설치, 운영해왔다. 24시간 정신보건전문요원에게 상담받을 수 있도록 정신보건센터 상담전화(1577-0199)도 운영 중이다.

류영철 경기도 보건정책과장은 “급작스런 구제역 피해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축산업 종사자들의 심리적 위기상황을 지원하고 정신건강 문제를 조기에 발견, 치료해 더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이런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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