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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시대,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경고
‘위험사회론’ 시각으로 백석역 온수관 파열사고 재조명
2018년 12월 07일 (금) 08:43:00 윤성규 기자 sky@safetoday.kr

   
▲ 송창영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방재안전공학과 교수
최근 들어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대형사고가 반복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건설기술 및 안전공학 등이 괄목할만하게 발전했고 재난·안전에 대응하는 국가의 관리체계가 개선되고 정비됐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재난과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 해에도 몇 차례나 반복되는 재난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 12월4일에 경기도 고양시 백석역 인근에서 지하 2.5m 깊이에 묻혀있던 850mm 크기의 온수 수송관이 파열돼 주변으로 100도씨의 뜨거운 물과 증기가 쏟아져 나와 1명 사망, 25명 부상이라는 인명손실을 초래한 사고는 현대사회의 재난은 우리의 일상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일상의 가운데 발밑의 지면이 무너지며 펄펄 끓는 물이 쏟아져 나오는 재난이 발생한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재난안전 전문가인 울리히 벡 교수는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현대사회가 도시화, 과학화, 고도화가 될수록 재난안전사고는 더 심각해지고 복잡다양해지며 그 빈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흔히들 현대 이전에 위험이란 자연에 의해 야기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면, 현대에 들어서의 위험은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의 원칙으로 통제가 가능한 것으로 상상됐다. 하지만 울리히 벡에 따르면 위험사회란 ‘통제 불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로, 현대는 더 이상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속시킬 수 없는 시대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지하 수송관처럼 인류가 구축해온 편리한 시설들은 이제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적절한 보호책을 마련할 수 없는 위험”을 불러온다고 벡은 경고하고 있다.

위험을 예측하고 그 위험을 다스리고자 오랫동안 노력해 온 인간은 역설적으로, 기술 발전이나 생산성의 급증과 같은 문명의 혜택으로부터 비롯되는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적 시각으로 백석역 온수관 파열사고를 재조명 해보자.

사고가 난 온수관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850mm 열 수송관으로 1991년에 지하 2.5m에 매립돼 인근 아파트와 상가에 난방에 쓰이는 뜨거운 물을 실어 보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온수 수송관의 기대수명이 40~50년에 달한다고 봤을 때 27년 된 사고 수송관은 아직 수명이 남아있다고 봐도 무방하나, 주변 습도 등 환경에 따라 조기에 파손될 수 있으며, 대형공사 등으로 연약 지반이 침하할 경우 가해지는 충격으로 파손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경기 고양·분당, 서울 강남 등에서 열배관 파열사고 15건이 발생했는데 모두 1997년 이전에 설치된 20년 이상된 배관에서 발생했다.

현재 국내에는 20년 넘은 배관은 686km로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전체 수송관(2120km)의 32%에 달하며, 낡아서 바꾸거나 보수해야 하는 30년 이상 된 노후배관은 전국에 총 51km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사회가 지하매설물로 인한 안전사고의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문제는 온수 수송관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발밑에는 상하수도관, 가스 공급관 등을 비롯해 통신선, 전력선 등이 무더기로 매설되어 있다. 특히 이런 지하 매설물이 모여 있는 ‘공동구’는 전국에는 총 30곳으로 154㎞에 걸쳐 광범위하게 설치돼 있다.

공동구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44조에 따라 200만㎡의 도시개발을 할 경우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할 지하통로다.

대통령 시행령에는 전선, 통신선, 수도관, 열수송관, 중수도관, 쓰레기수송관이 필수 설치되도록 규정돼 있으며 이외에도 가스관과 하수도관은 지자체장이 위원장을 맡는 ‘공동구 협의회’의 검토를 받아 추가 설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동구에는 생활과 보안, 치안, 산업 등과 밀접한 온갖 인프라 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국민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매우 높으며, 재난이 발생할 경우 인근 지역이 마비되는 등 국민 생활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실제로 2018년 11월24일 발생한 KT 아현지사 지하 화재사고는 통신선만 설치돼 있던 통신구에서 발생했지만 그 여파는 인근지역 전화를 비롯한 인터넷, 카드결제, 금융업무 등 사회전반이 마비되는 재난을 초래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재난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관계 부처에서는 아직 지하매설물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하시설물 지도 등 측량에 의한 지하 매설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재해 노후화에 대한 유지보수를 체계적으로 수립하기가 어렵고, 이러한 문제로 시공 중 땅을 잘못 파다가 언제 어디서 지하매설물이 파손될지 몰라 쉽사리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의 부재뿐만 아니라 확실한 관리주체의 부재에도 있다. 공동구의 경우 국토계획법에 따라 일차적인 관리의 책임은 지자체 장에게 있으나 실제적인 관리는 전력선의 경우 한국전력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신선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상수도의 경우 한국수자원공사와 환경부가 제각각 맡고 있다.

통신, 전력, 상하수도, 가스관 등이 밀집된 대형 지하구인 공동구의 관리·감독기관으로 지방자치단체,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에 각종 공사까지 얽혀 있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공동구는 그나마 개별적으로 관리 주체라도 있지만 민간에서 각종 토목공사와 통신선 설치 등을 위해 설치한 지하구는 종류가 다양하고 수도 많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이 안 돼 있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재난관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위험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 재난의 위험을 개선하고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먼저 상하수도, 통신, 전력선 외에도 지하구조물을 망라한 지하지도인 ‘지하 통합정보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또 일선에서 지하시설물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지자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여러 기관 및 단체가 얽혀 있는 안전관리주체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해 유지보수나 안전진단을 실시할 수 있는 관리주체에 대한 기준을 제도적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후배관 전수조사 등 안전사업 수행을 위한 예산 편성이 우선돼야 하며 이는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 이를 실행하는 단계로 안전대책이 세워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원인 분석에서 대책 마련까지의 진행은 잘되고 있으나, 대책이 현행 제도나 법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연구하고 이를 시스템적으로 제도화해 현행 법규를 이에 맞게 고쳐야 향후의 유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렇게 세워진 대책이 제도나 예산에 반영되기도 전에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번 소를 잃어버렸더라도 다시는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고장 난 외양간을 고쳐야한다. 한낱 미물인 소를 잃어도 많은 시간과 자금을 소모하며 그 틀인 외양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을 잃고도 잘못된 제도와 인식의 틀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의 안전을 고장 난 울타리 속에 방치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2018년 12월7일
송창영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방재안전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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