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 충북 음성소방서장은 7월10일 오후 2시28분 소방방재청 홈페이지에 ‘끝으로 남기는 글(류충)’이라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이하는 류충 소방서장이 쓴 ‘끝으로 남기는 글(류충)’ 원본이다.

네티즌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정책대안도 토론도 기대 할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공포심을 통해 굴복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골몰하는 현 소방방재청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되어 마지막으로 몇 가지 적어보고 떠날까 합니다.

검찰조직과 같이 권위적인 곳도 조직에 위기가 오면 전국의 검사장들을 소집하고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소방방재청에서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 외에 그 어떤 조치도 내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우리 소방가족을 소방의 주인으로 보지 않고 오직 지배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그동안 저의 생각과 처지에 동감을 표시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과, 또한 저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용기 내어 표현해 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정든 소방조직을 떠나 다른 삶을 살아볼까 합니다. 어차피 떠날 직장, “10년 일찍 떠나고, 10년 일찍 시작할 뿐”이니 너무 염려 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지금 약간의 두려움이 없지는 안지만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정도로 힘들지도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저는 오히려 제 앞에 놓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래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우리사회에서 자기신념을 따름으로서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온전히 받아들일 겁니다. 오히려, 진심을 다해 성원을 보내 주신 여러분의 관심과 우정의 가치를 따지자면 저는 부자가 되어 떠납니다. 매우 흡족해 하면서요....

1. 우리 소방이 장외 투쟁을 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하여

사실, 아무리 공포심으로 조장된 직장분위기라 하더라도 이번에 제가 조직외적 라인을 통해 정책을 비판한건 기본적으로 옭지 않은 행위입니다. 이것은 청의 과-국-차장-청장의 의사결정라인이 민주적이며, 생각의 다양성에 대해 존중하는 직장분위기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소방이 종종 장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근본이유는 소방의 진정한 여론과 정책이 “청장”선에서 묵살(현 소방방재청의 과장-국장-차장은 주요 결재에서 제외하고 청장님 혼자 결재)되어 더 이상의 윗선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방의 현실을 반영한 주요정책들은 국회를 통해 대부분 의원입법으로 반영됩니다. 정부조직 내에는 소방의 현실을 이해하는 고위공직자는 거의 없습니다. 모두 일반 행정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죠. 그래서 소방에 대한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던 행안부장관과 대통령도 몇 개월만 일반행정직으로 포위되어 있게 되면 그들에게 모두 설득당하고 맙니다.

소방의 관점이 삼각형이고, 일반행정직 관점이 사각형이라면, 그분들에게 보고되는 거의 모든 보고서는 사각형의 관점에서 보고되어 삼각형의 틀로 바라본 소방의 관점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근본적인 국가의사결정시스템 상의 소외와 결함이 존재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소방은 주로 장외(국회) 투쟁을 하는 방식에 익숙해 있고, 국회에서 조차도 일반행정직 로비에 설득당하거나 그들의 관점을 가진 국회의원들에 의해 종종 결정적 순간에 좌절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드시 소방직 청장이어야 하는 이유이며, 소방조직과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는데 필요한 결정적 요소입니다.

2. 지나치게 공포심을 이용하는 직장분위기에 대하여

이번 자유토론방에 글을 남기신 분 중에서 “주민등록 번호를 입력하려는 순간 두려움이....”라는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조직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와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조직을 장악하는데 단기적 효과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리적 증오심과 민심이반으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저는 이것이 우리 소방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잠재된 진짜 민심으로 봅니다.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힘(권력)에 의한 막연한 공포심은 과거의 독재정권을 통해 길들여진 심리적 억압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증후군이자, 직장을 잃음으로서 닥치게 될 미래의 존재(생계)에 대한 막연한 경제적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의 집합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 소방의 직장생활에서는 긍정적 유형의 사람(Y형 인간)을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사랑과 자비(칭찬, 인정, 상) 보다는 부정적 유형의 사람(X형 인간)에 잘 적용되는 공포심을 이용한 처벌수단(징계, 비난, 감봉)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믿을 수 없고,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두렵게 만들고, 싫은 것을 싫다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조직문화가 소방방재청에 열병처럼 번져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어도 그대로 관망만 하는 것이, 비판하는 것 보다 이익이 된다는 것을 학습하며 길들여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인위적 공포로부터 정신적 노예로 전락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선거, 적극적 참여, 다면평가 등)를 올바르게 행사하고, 자신의 지나친 욕심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① 먼저, 경제적 공포심을 극복하는 일에 대하여 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요즘 지나치게 조장된 소비중심의 문화 속에서 탐욕의 노예가 되어, 매일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높이, 좀 더 많이 가지도록 유인하는 교육과 광고, 드라마 등의 유혹에 빠져 소비중심의 경쟁사회 속에 예속되어 매일 쳇바퀴 속에서 살아가지요. 아마도 외계인이 우릴 보면 “끊임없이 바퀴를 돌리는 벌을 받고 있군!” 이라고 생각 할 겁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속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얻기”로 부터 “덜 갖되, 더 충실하기”로 바꾸기만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물질문명의 정점에 달한 우리사회에서 일, 명예,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능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고 했습니다. 고인이 되신 우리 법정스님의 삶의 지침이기도 하구요.

②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우리는 종종 화재현장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곤 합니다. 특히, 가스통이 즐비하고 위험물질이 있는 화재현장에서 폭발과 붕괴, 낙하물에 대한 공포심에 짓눌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 소방의 임무는 이러한 죽음의 공포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패닉에 빠져 당황하게 되고,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종종 순직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물론 불가항력적 순직사고도 있지만요. 그래서 우리는 이 죽음의 공포를 본질적으로 극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 죽음에 대한 철학을 올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를 보면, “겉으로 보이는 모양 말고는 어떤 것도 죽지 않는다. 본질에서 자연계로 건너가는 것은 탄생이요. 자연계에서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죽음처럼 보일 뿐이다. 실제로 창조되거나 사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게 될 뿐이다.”라고 합니다.(헬렌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이와 같은 올바른 죽음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죽음에 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꼭, 이와 같지는 않더라도, 죽음의 공포심을 극복하는 일은 정신적으로 진화하는 또 하나의 측면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같이 경제적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들의 직장생활은 정신적으로 좀 더 자유스럽고 행복한 시간으로 변하게 될 수 있습니다.

3. 다양성이 존중되는 직장을 만드는 일에 대하여

요즘 우리 소방에서는 지나친 획일주의가 만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제복문화를 가진 상명하복의 계급조직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획일성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화재와 같은 위기현장에서의 일사분란한 조직적 활동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평상시 직장생활에서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척하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이번 해병대 사건에서도 나타난 근본적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하얀색만 있어서도, 파란색만 있어서도 아니며, 다양한 색깔이 조화롭게 석여 총 천연색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회색이라고 해서 남들도 모두 회색이어야 됨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이 검정, 노랑, 빨강...색이기 때문에 나 자신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름다워지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름을 축하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생활에서 이와 같이 존중될 때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4.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소방의 현실과 바람은 이미 전달되었을 겁니다. 우리 청장님도 우리 소방가족에게는 의붓아버지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아버지입니다.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한때 우리 소방가족의 아버지로서 오래 동안 기억될 우리의 아버지 이지 않습니까?

일상으로 돌아가 우리 모두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우리 소방의 공동가치가 어떻게 달성되는가를 주시하고 기다리다 보면 오늘날의 이 서러운 소방의 현실은 반드시 비전을 꿈꿀 수 있는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겁니다.

저 때문에 좌절을 맛보게 될 분이 있다면, 그분에 진 업에 대하여는 살아가면서, 또 이후의 삶을 통해 갚도록 하겠습니다.

소방방재청 모든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끝으로, 오래오래 두고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선시”를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리면서, 여러분 모두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기원합니다.

원공(願空)

평생 출세에 마음 쓰기 번거로워
드높은 하늘의 뜻에 이 몸 맡기고
자루에는 쌀 석 되 화롯가엔 땔감 한단
방황이나 깨달음은 알바 아니며
티끌 같은 이익이나 명성은 아무래도 좋다
밤비 부슬부슬 내리는 초막에서 두 다리 한가로이 뻗고 있노라
(료칸)

세이프투데이 윤성규 기자(sky@safetoday.kr)

저작권자 © 세이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