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출간했던 개인 전자책 독일소방이야기를 올해 2월부터 세이프투데이를 통해 무료 다운로드 방식(https://www.safe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75877)으로 공유해 오고 있다.

나름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간 10년을 넘기면서 어쩌면 그 책에 담은 내용이 이제 서서히 철 지난 정보가 돼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세이프투데이를 통해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 새 옷을 입혀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주제는 독일소방이야기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했던 소방의 임무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진 1. 취리히 소방사다리차에 적힌 기관명칭 (출처 : 취리히시)
사진 1. 취리히 소방사다리차에 적힌 기관명칭 (출처 : 취리히시)

◆ 구조 ? 구급 ? = 지난 2005년 나는 연락을 하고 지내던 취리히의 소방관을 만나기 위해 독일에서 취리히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내렸지만 아쉽게도 그 친구가 당일 근무 중이라 마중 나오지 못해서 택시를 타기 위해 택시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이윽고 택시가 왔는데 고민이 하나 생긴다. 택시기사가 어디로 갈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취리히시는 2000년 행정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소방과 구급, 재난과 민방위까지 하나로 통합했고 그 조직의 명칭을 ‘Schutz & Rettung Zürich(슛츠 운 레퉁 취리히)’라고 했다. 

이로 인해 취리히 소방서라는 명칭이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기관 명칭이 바뀐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택시기사가 새로운 기관 명칭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도 걱정이었다.

결국 나는 신규 기관명칭을 얘기하면서 소방서라는 말을 덧붙였고 택시기사는 ‘Hauptwache(본서)’를 말하는 것이냐고 확인한 뒤 나를 소방서로 데려다줬다.

참고로, 스위스는 칸톤(Kanton)이라는 행정구역 단위로 소방 재난 구급의 기관명칭이 다른데, 행정수도인 베른 역시 취리히와 동일한 기관명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Schutz & Rettung’이라는 명칭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식 홈페이지에서 영어 페이지를 열어보면 이 기관의 명칭은 ‘Protection & Rescue’로 돼 있다. 우리는 보통 ‘Rescue’를 ‘구조’라고 옮겨 적는다.

Rettung (독일어) → Rescue (영어) → 구조 (한국어) 이게 맞는 걸까?

외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종종 개념 차이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Rettung’을 ‘구조’라고 이해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구조보다는 구급에 가까운 개념이다. ‘Rettung’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려면 생뚱맞게도 독일 소방의 4대 임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독일 소방대를 방문하다 보면 건물이나 차량, 소방대 깃발 등에서 둥근 원 형태로 스케치하듯 그려진 로고를 볼 수 있다. 

사진 2. 독일소방의 로고 (출처 : DFV)
사진 2. 독일소방의 로고 (출처 : DFV)

이것은 독일소방의 4대 임무인 ‘Retten (右下) – Löschen (左上) – Bergen (右上) – Schützen (左下)’를 표현하는 것으로 1973년 독일 소방협회는 현대에 다양해진 소방대의 활동영역을 4개 분야로 재정립하면서 에센의 화가에게 의뢰해 새로운 로고를 제작했는데 협회가 이 로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예전에는 도끼가 교차하는 모양의 로고를 사용했었다.

이 로고에 그려진 소방대의 4대 임무는 독일소방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으로 초등학교 소방안전 관련 시험에도 출제되기도 한다. 

사진 3. 독일소방의 4대 임무 (출처 : LFV바이에른)
사진 3. 독일소방의 4대 임무 (출처 : LFV바이에른)

(1) Löschen (화재진압) = 소방의 가장 오래된 임무로 말 그대로 화재를 진압하는 활동이다.

(2) Schützen (재난예방) = 홍수가 나거나 강풍이 불 때 제방을 쌓거나 물을 빼내서 침수사고를 방지하고 쓰러진 나무를 치워 차량사고를 방지하는 등 어떤 재난의 발생으로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말한다. 여기에는 화재예방활동도 포함된다.

(3) Bergen (물적피해 대응) =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에 대한 것이 아닌 차량, 건물, 유체 등에 물적 가치를 손상하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고 복구하는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전복되거나 물에 빠진 차량을 치우거나 도로에 쏟아진 화물을 치우는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4) Retten (생명구조) = 사람이나 동물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살려내는 활동을 의미한다. 종종 독일에서는 일부 소방대원들이 구조활동과 관련해 언론보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사고차량에서 사람을 안전하게 구조해 구급대에 인계했는데 언론보도에서는 구급대가 구조(Retten)했다고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소방대원들은 ‘부상자는 자신들이 구조했는데 왜 구급대가 구조했다고 적었냐’고 항의한다.

이러한 사례는 ‘Retten’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의 오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살려내는 활동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차에서 사람을 꺼내는 것도 ‘Retten’이고 꺼낸 부상자를 구급차로 옮겨 처치하며 병원으로 가서 인계하는 것도 ‘Retten’에 해당하기 때문에 구급대에 의해 구조됐다고 적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구급활동을 ‘Retten’의 명사형인 ‘Rettung’으로 적는다. 구급차도 Rettungswagen (구급 + 자동차)이라고 한다.

사진 4. 오스트리아 소방의 4대 임무 (출처 : LFV NÖ)
사진 4. 오스트리아 소방의 4대 임무 (출처 : LFV NÖ)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도 소방의 4대 임무는 독일소방의 그것과 유사한데, 임무의 순서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고 별도의 로고는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소방활동 현장에서 Bergen과 Retten이 병행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자면, 사고 차량에서 사람을 구해서 구급대에 인계하고 나서 파손된 차량을 치우는 것은 Bergen에 해당된다.

이제 소방활동에 대한 명칭과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으니, 다시 취리히 소방이 포함된 조직의 명칭(Schutz & Rettung)으로 돌아와 보자.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결국 정리하자면 ‘Schutz’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소방에서 말하는 4대 임무 중 Löschen, Bergen, Schützen 등 세 가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그리고 ‘Rettung’은 나머지 하나인 ‘Retten’과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생소한 독일어 단어에 대한 많은 얘기에 머리아플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소방의 임무개념을 알게 된다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소방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 소방 이야기’ 전자책 무료공유 결정

조현국 과장, 전자책 전체 내용 세이프투데이 통해 공유

기자명 세이프투데이  입력 2023.02.08 11:09 수정 2023.02.08 11:11

https://www.safetoday.kr/news/articleView.html?idxno=75877

2023년 12월11일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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