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필자는 개인적으로 크로아티아 한 지역 소방대 창설 13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고 방문했다가 얼떨결에 기네스북 기록도전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큰 체육관을 꽉 채운 마을주민과 군인, 공무원 등의 참가자들이 주최 측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먹었는데, 이것은 동시에 같은 음식의 아침 식사를 가장 많은 사람이 함께 먹는 세계기록(Big Breakfast Record)에 도전하는 행사였다. 

▲ 그림 2. 기네스북 기록 인증서 현장 수여 - 출처 : Grisu Marathon

이렇게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의 종목에 있건 없건 세계적으로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결과물인 진기한 세계기록들을 모아놓은 기네스북이 있다. 당시 먹었던 음식은 건강한 식사를 위해 개발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래서였는지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맛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약 3만9000명으로 기네스 기록을 세웠지만 이후 2014년 터키에서 약 5만2000명이 세운 기록으로 대체됐다.

기네스북에는 소방과 관련된 최고 기록들도 등재돼 있는데, 가장 키가 큰 소방관(미국 211.266cm), 방화복장 가장 빠르게 입기(독일 27.08초), 가장 많은 소방헬멧 수집(네덜란드 838개), 1시간 소방대 하강봉 타기 최장길이(영국 7,963.2m), CTIF 클래식 9인 속도방수(28.5초), 가장 긴 물 버켓 이어 나르기(4,589.75m) 등 사람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주는 다양한 종목과 그 최고 기록들이 있다.

◆ 최장거리 호스전개 물 운반 기록

기네스북에 등재된 그런 많은 소방분야 기록 중에는 한 지역, 나아가 한 나라의 소방력의 진가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 종목은 바로 최장 거리 소방호스전개(The Longest Chain of Fire Hoses)이다. 

1. 기록의 개요
호스전개 기록은 무려 63.206km에 달한다. 더 놀라운 것은 기록의 제목은 호스전개라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호스전개 후 물을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림 3. 최종 물운반 목적지의 수조와 벤치 - 출처 : Grisu Marathon

2014년 5월31일 이탈리아의 남티롤 주에 있는 브루넥(Bruneck) 지역의 의용소방대를 중심으로 총 185개 의용소방대에 소속돼 있는 1790명 대원 전원이 이 기록갱신을 위해 참가했다. 이전에 없었던 훈련이기도 했지만 당시 지역축제 기간에 특별한 이벤트로 소방에서 기획한 행사였다.

동원된 장비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직경 75m 소방호스 20m짜리가 3158개, 동력소방펌프 126대였고 그 외에 장비와 인력 운송을 위한 차량을 비롯해 지점과 지점, 지점과 통제소간의 연락을 위한 무전기, 예비호스, 화재대비 소화기 등 많은 장비가 동원됐다.

▲ 그림 4. 출발점 계곡에서 물 흡수작업 - 출처 : Grisu Marathon

기록도전은 2014년 5월31일 오전 7시에 출발지점에서 계곡의 하천에서 흡수된 물을 호스와 동력소방펌프를 통과시키며 11시간 동안 63km를 넘게 이동시킨 끝에 당일 오후 6시 축제가 열리던 광장의 수조로 넣을 수 있었다.

▲ 그림 5.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뿌려진 물 - 출처 : Grisu Marathon

그리고 이를 기네스북에서 나온 감독관들이 확인했고 기네스 기록인증서가 소방대장에게 수여됐다.

2. 기록도전이 어려운 이유

185개 소방대의 1800명의 대원들을 동원해 3200개의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만 보면 이러한 기록도전은 단순히 인력과 장비를 장시간 동원하면 저절로 얻어지는 노동집약적 활동으로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 그림 6. 호스전개 물운반 코스 - 출처 : Grisu Marathon

호스를 통해 이동하는 물은 호스를 통과하는 유량(L/min)과 거리에 따라 압력이 감소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간의 일정 압력 이하로 떨어지는 지점에 가압용 동력소방펌프(또는 화재진압차)를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호스전개 구간의 높낮이가 거의 없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 그림 7.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호스전개 경로 - 출처 : Grisu Marathon

그림 6은 이번 기네스 기록도전에서 호스가 전개된 구간을 표시한 것이다. 이동코스 상에 높낮이의 차이가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림 7.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호스전개 경로 - 출처 : Grisu Marathon

최초 출발점은 해발 842m였지만 중간에 있는 최고점인 푸어켈파스(Furkelpass)는 해발 1771m였고, 다시 최종 목적지(Ziel)의 높이는 해발 835m로 구간별 편차가 컸다. 이로 인해 동력소방펌프 간의 배치간격의 편차가 커지게 된다. 그렇다고 며칠씩 기록도전을 위해 펌프 배치를 여러 간격으로 테스트 해보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

▲ 그림 7. 교통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호스전개 경로 - 출처 : Grisu Marathon

그래서 사전에 철저한 조사와 계산을 통해 가압을 위한 동력소방펌프 배치지점을 정확하게 지정하고 인력과 장비가 바로 이동해서 장비를 설치해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펌프와 호스전개만으로 물이 운반되는 경우에 있어 한 구간이 멈추면 전체적인 물 흐름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전 지형에 대한 조사와 계산이 잘못돼 동력소방펌프 오배치가 생긴다면 현장에서 실행하는 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그림 8. 구간상황을 통제소의 무선통신 및 자전거 이동을 통해 점검 - 출처 : Grisu Marathon

또 사전에 계산하고 계획한 것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하거나 약간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너무나 원거리 구간에 걸쳐 서로 다른 소방대가 흩어져서 호스전개와 가압펌프연결 및 펌프조작을 하기 때문에 총괄통제소의 통제역할과 구간을 이동하며 컨트롤하는 임무 역시 중요하다.

이렇게 장거리 호스전개 물 운반 기네스 기록의 도전은 대규모의 소방 인력과 장비의 동원이 필요하면서 그에 못지않게 치밀한 사전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 이를 수행하는 소방의 높은 기술성 및 전문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그림 8. 구간상황을 통제소의 무선통신 및 자전거 이동을 통해 점검 - 출처 : Grisu Marathon
▲ 조현국 양구소방서 소방행정과장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현재 이 종목에 대한 기록도전은 거의 없었다. 2003년 스위스 베른소방협회가 협회 창설을 기념해서 56km를 전개한 기록을 2014년 이 이탈리아 소방대가 갱신한 이후로 현재까지 아무런 도전이 없는데, 이것은 그만큼 이탈리아 소방대의 기록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기네스 기록 도전에 바탕이 되는 장거리 호스전개를 통한 소방용수의 운반과 가압용 동력소방펌프 배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과 관련해 이해에 참고가 될 만한 최신 자료를 번역해 보았다. 이 번역 자료는 이 칼럼에 별도 파일(칼럼 상단)로 첨부돼 있다.

최근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 소방학교에서 제작한 것으로 분량이 작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구성이 돼 도움이 될 것이다.

2022년 4월14일 
조현국 양구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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