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독일 소방 이야기’ 업데이트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소방 유물과 박물관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번 주제와 관련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흥미로운 해외 이슈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진 1 - 오스트리아 빈소방서 박물관 전시물
사진 1 - 오스트리아 빈소방서 박물관 전시물

◆ 미국 텍사스와 독일 바이에른의 깃발 논란 = 작년부터 미국 텍사스와 독일 바이에른의 지역에서는 오래된 깃발 하나를 두고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 발단은 2023년 3월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는 독일 여성 아니타 융이 어느 날 휴스턴에 있는 총기점을 방문했다가 천장에 걸려 있는 흥미로운 깃발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그 깃발에 적힌 글자를 보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소방대 기일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사진 촬영했다.

사진 2 – 미국 총기점에서 소방대기를 발견한 독일여성(출처 : BR24)
사진 2 – 미국 총기점에서 소방대기를 발견한 독일여성(출처 : BR24)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깃발에 있던 소방대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마을임을 알아냈고 그 지역 소방대의 페이스북에 나와 있는 현재의 소방대 기와 자신이 촬영한 기의 사진을 비교해 본 뒤 해당 소방대에 사진을 보내며 자신이 발견한 것이 해당 의용소방대의 기가 맞는지 문의했다. 

연락받은 소방대 대장은 여러 자료와 기록을 조사해 텍사스 총기점에 걸린 기가 자신들의 소방대 기라는 것을 확인했다.

사진 3 - 총기점에 걸린 소방대 기의 전면과 후면(출처 : 현지 소방대)
사진 3 - 총기점에 걸린 소방대 기의 전면과 후면(출처 : 현지 소방대)

◆ 소방대 깃발 반환 운동 = 이 소식은 지역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소방대원들은 물론 지역 주민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독일 소방대 기가 미국 텍사스 소재 총기점에 걸리게 된 것일까? 독일 바이에른 주에 있는 인구 600여명에 불과한 에버하르츠로이트(Eberhardsreuth) 마을에는 1869년 의용소방대가 창설됐고 1906년 소방대 깃발이 처음 제작됐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소방대원들은 이 깃발이 분실된 것을 알게 됐지만 언제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기다렸지만 깃발을 되찾을 수 없게 되자 결국 1986년도에 소방대는 원본과는 다른 문양으로 다시 깃발을 제작했다.

다만, 미국 텍사스에서 그들의 소방대 기가 발견됐고 사라진 시점이 2차 대전 종전 직후였던 것으로 볼 때 독일에 들어왔던 미군이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 4 - 1986년 제작한 소방대기(출처 : 현지 소방대)
사진 4 - 1986년 제작한 소방대기(출처 : 현지 소방대)

◆ 큰 기대, 그러나 또다시 행방불명 = 소방대장과 대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완전히 잊어버려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소방대 기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소방대장은 곧 반환받기 위해 총기점 주인과 연락을 취하고 여름에 있을 소방대 축제 행사장에 걸어두겠다는 자신감도 보였다. 그렇게 소방대원들도, 지역 주민도, 미국에서 소방대기를 발견했던 독일 여성도 깃발을 반환받는 것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방대 기 반환은 그런 기대와 달리 이상하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다. 소방대 기 반환에 협조해 달라는 소방대장의 요청에 총기점 주인의 첫 반응은 ‘No’였다. 

이후 현지 언론과 독일 소방, 지자체 등에서 반환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총기점 주인은 바쁘다며 이런 요구에 무관심했고 답변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이렇게 소방대기 반환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더 많은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2023년 여름 어느 날, 총기점 주인이 여러 일로 바쁘다보니 고용된 점원이 매장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방대기에 대해 알게 된 누군가가 주인이 없는 시간에 매장에 들어와 점원에게 소방대기를 넘겨받기로 주인이 약속했다고 속여 소방대기를 넘겨받고 사라졌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 소방대원들과 주민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2만 달러(한화 약 2600만원) 모금 운동이 펼쳐지면서 누구든지 소방대기를 갖고 있다면 돈을 줄 테니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이번 소방대기 분실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총기점 주인은 오히려 독일인이 음모를 꾸몄던 것으로 의심하며 자신의 소방대기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사진 5 - 신규 제작 소방대기 신고 행사(ff krems)
사진 5 - 신규 제작 소방대기 신고 행사(ff krems)

◆ 소방대 기의 가치 = 미국 총기점 주인이 반환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언론이 나서고 문제해결을 위해 지방정부와 외교부까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이후 모금 운동까지 이어질 정도로 지역에서 소방대기를 되찾으려는 의지와 공감대가 상당히 컸다. 

인구 600명의 작은 마을의 소방대에서 잃어버린 소방대기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모두가 이렇게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소방대 기가 가진 예술적 가치는 어쩌면 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 소방대에게 있어 이 소방대 기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이다.

유럽에서 소방대의 기는 보통 자수로 1개씩만 외주 제작된다. 지역의 상징, 소방대 명칭, 그리고 소방대의 신념 등을 표현하고 있다. 소방대기는 소방대의 중요한 상징이기 때문에 실내에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중요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되고 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뤄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 색이 바래고 구조적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는데, 그러면 소방대기를 새로 제작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소방대기는 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있어 독일 소방대가 반환을 서둘렀던 이유는 소방대기가 만들어진 지 117년이 지난 직물이기 때문에 천장에 걸려 있게 되면 무게에 의해 구조적 처짐 등의 문제로 손상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사진 6 - 1950년 제작된 펌프차
사진 6 - 1950년 제작된 펌프차

◆ 50년 된 소방차 시승 = 2003년 독일 동부의 츠비카우(Zwickau)시 외곽의 작은 의용소방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청사가 작았지만 나름 박물관이라며 전시공간을 만들어 두고 있었고 창고에는 당시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1950년대에 만들어진 펌프차를 보관하고 있었다. 

차량에 대한 소개를 듣다가 아직도 주행 가능하다는 말에 믿기지 않는다고 했더니 바로 확인을 시켜주겠다며 시승을 시켜줬다. 

정말로 주행 가능했다. 느리고 승차감도 좋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매연은 참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십 년이 지난 퇴물임에도 온전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이 있었으니, 바로 당시 중앙소방학교에 비가림막 하나 없이 노천에 방치돼 부식돼 가던 퇴물 소방차 2대였다.

우리와 그들이 퇴물 소방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진 7 - 슈타이어마르크 주 소방박물관
사진 7 - 슈타이어마르크 주 소방박물관

◆ 소방박물관 운영 =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체코, 크로아티아 등에 있는 크고 작은 여러 소방박물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는 과거에 사용했던 수많은 차량과 장비, 문서, 사진, 모형이 전시돼 있다. 거의 대부분 소방박물관은 일일 몇 시간만 개방되거나 사전 예약을 통한 관람만 허용되고 있고 주로 퇴직소방관이나 의용소방대원들의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방대는 소방유물을 전시하는 곳의 그 형태나 규모에 관계 없이 모두 박물관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에서 소방박물관의 정의에 부합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방박물관의 정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있는 CTIF 산하 역사위원회에서 내놓은 참고자료가 있다(붙임 파일 참조). 

가장 포괄적이고 국제적으로 인정된 박물관의 정의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1974년 7월 14일 코펜하겐 11차 총회에서 승인돼 1986년 11월 4일판 3항, 4항에 규정)으로 다음과 같다.

‘박물관이란 영구적인 사회와 그 발전에 봉사하는 비영리의 기관으로서 대중에게 개방되며 학문, 교육, 재미를 목적으로 인간과 환경의 물질적 증거물들을 습득, 수령, 탐구, 증진, 전시하는 것이다.’

역사위원회는 ‘소방박물관은 질적인 면을 나타내는 용어로 ICOM의 정의에 따라 수집, 보전, 연구, 증진이라는 고전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정의에서 보면 단순히 유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보여주기만 하는 경우에는 규모에 상관없이 소방박물관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또 유물의 보존 작업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비의 칠이 벗겨져 말끔하게 보이겠다고 그냥 아무렇게나 페인트칠을 해버리거나, 일부 부속품이 없을 경우 고증없이 너무나 현대적인 것으로 대체해 채우는 것이 잘못 보존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관련해 역사적 사료의 취급에 있어 참고할 자료도 있다.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주 소방박물관장이었던 마그 하네스 바이넬트가 보내 준 자료를 통해 유물의 종류와 재질별 보존처리 요령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붙임 파일 참조).

여러 소방박물관들이 유지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를 확보하기 위해 박물관을 개방해 관람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시설운영에 관한 부분도 있지만 유물을 보존하는 작업을 위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경비를 충당하는 방법으로는 관람료 외에 기념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소방서의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관설소방서의 역사를 가진 만큼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다른 소방박물관에서 보기 힘든 전시물들이 많았다. 

상시 관리원이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담당하는 대원이 와서 안내하고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기념품으로는 인형, 모자, 헬멧, 음악CD, 소방유물의 모형 등이 있었다. 이와는 달리, 다른 소방박물관에서는 예전에 사용했던 전술교범이나 음악대악보의 사본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 8 - 빈 소방서 박물관에 있는 기념품 전시대
사진 8 - 빈 소방서 박물관에 있는 기념품 전시대

◆ 전시물의 종류 = 소방박물관에 전시되는 물품들은 소방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겠지만, 주로 피복, 개인안전장비, 현장활동장비, 차량, 소화기, 사진, 서류, 책자 등으로 다양하다. 

일부의 경우 마네킨이나 모형을 통해 신고접수 상황실이나 화재진압이나 구조현장의 상황을 재현해 장비나 시설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기도 하고, 한정된 공간에 큰 장비를 전시할 수 없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작은 크기의 모형물로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모형물을 상당히 정교하게 제작돼 있었다.

이런 유물은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순서대로 나열되며 변천과정을 보여주는데, 지금 사용하는 장비의 예전 모습을 보면 장비의 기능과 목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활동했던 선배 대원들의 노고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게 된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를 이해하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사진 9 - 취리히와 브뤼셀 소방서 전시관의 장비모형
사진 9 - 취리히와 브뤼셀 소방서 전시관의 장비모형

일례로 독일 칼스루에 소방서의 정기 행사인 소방서 개방의 날 행사에서 나왔던 장면을 들어본다.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상황이 연출된다. 예전 복장을 한 사람들이 예전 사용했던 차량을 타고 출동해 건물에 오른다. 

그러나 화재는 잡히지 않고 현대의 높아진 건물에 올라가서 불을 끄기에는 예전 사다리도 너무 짧다. 결국 다 포기하고 철수한다. 이때 현재 소방서의 차량들이 도착해서 멋지게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작업을 실시한다.

사진 10 - 예전 화재진압활동 재현행사(출처 : blaulichtwelten)
사진 10 - 예전 화재진압활동 재현행사(출처 : blaulichtwelten)

행사를 위한 볼거리의 하나였겠지만 이를 통해 소방서는 과거로부터 현재의 소방이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으며 이로 인해 주민의 안전이 얼마나 향상됐는가를 보여주고 이해시킬 수 있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사진 11 - 뉘른베르크 소방서 전시관 및 별도 지하 차량 보관소
사진 11 - 뉘른베르크 소방서 전시관 및 별도 지하 차량 보관소

◆ 오늘은 내일의 과거 = 2005년 뉘른베르크 소방서를 방문했을 때, 다른 소방서나 의용소방대와 마찬가지로 청사 내에 자체 소방유물전시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방서 밖에 있는 지하의 긴 폐 철도터널에 사용하지 않는 예전 소방차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뉘른베르크 소방서의 간부는 당장 소방차량들을 전시할 박물관이 없기 때문에 임시보관하고 있는 것이고 향후 전시공간이 확보되면 옮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럽에는 크고 작은 많은 소방박물관이 존재하고 있다. 또 박물관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전시실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전시라고 하기에는 볼품없는 형태지만 이곳저곳에 공간을 마련해 소방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진 12 - 크로아티아 다루바르 소방서에 있는 소방차량 전시공간
사진 12 - 크로아티아 다루바르 소방서에 있는 소방차량 전시공간

당장 비좁고 노후된 청사조차 다시 지을 재정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번듯한 소방박물관을 짓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반면에 박물관을 짓더라도 전시공간을 채울 충분한 소방유물이 확보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럽에서도 현대화 바람이 일면서 소방대에서도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옛것을 무분별하게 버린 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크고 작은 많은 소방박물관들이 일정 양의 소방유물을 전시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선각자들이 옛것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해외의 소방관서 가운데에는 오랜 역사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전시관 하나 없는 곳도 있어 이와 대조를 이루는데,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한 자각에서 현재는 유물보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가 된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면 오늘 사용한 많은 것들이 소방박물관에 전시되는 소방유물의 자격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시점에서 과거의 것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인 현재의 것까지 살펴보며 소방유물을 대한 시각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2024년 1월15일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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