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스위스 취리히역에서 마중 나온 다니엘이라는 소방관을 만났을 때 일이다. 그가 예약해 준 인근 호텔로 같이 짐을 들고 걸어가다가 한 서점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가 갑자기 잠깐만 기다리라며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진열대에서 뭔가를 찾아 급하게 계산한 뒤 가지고 나왔는데 놀랍게도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독일에서 발행하는 소방잡지였다.
필자 역시 같은 독일 소방잡지를 종종 보곤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우편주문이 아닌 현지 서점판매가 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의 소방잡지에 대해 필자가 놀라게 되었던 다른 경험을 하나 더 언급해 보고자 한다. 2003년 휴가를 내어 연락하고 지냈던 독일 동부의 작은 도시 가이어의 의용소방대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집에서 묵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가 내준 방은 그의 서고로 소방 관련 도서가 가득했는데, 그중에는 벽을 따라 몇 미터에 이르는 긴 소방잡지만 모아둔 책꽂이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미 읽은 몇 년 지난 소방잡지들을 왜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가 답하길, 이미 읽은 잡지지만 나중에 필요할 때 활용할 정보들이 있어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후로도 방문했던 다른 독일 소방대원들의 집에서 이런 광경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하나 가져가게 달라고 하면 몇 권의 후보를 추린 뒤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 더 안 봐도 되는 것을 골라서 주곤 했다.
이상의 두 가지 필자의 경험으로부터 독일의 소방잡지가 얼마나 많은 소방대원들이 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보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등 유럽국가의 소방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또 한 가지 권장할 만한 것이 바로 현지에서 발행되는 소방잡지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소방의 많은 제도적, 기술적 정보를 소방잡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소방잡지는 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국내에서도 소방을 테마로 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신문, 매거진 등이 있어 소방관들을 비롯한 관련 분야의 독자들에게 정보와 소식을 제공하고 있다.
잡지 그 자체로는 언론의 영역이겠지만 소방잡지는 출판인과 소방관 등 관련된 독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유럽에서 발행되는 소방잡지들에 대해 한 번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지역별 소방잡지의 발행
소방잡지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구분해 볼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소방대원이 속해 있는 소방대와 소방협회 등 소방기관의 소식, 소방대원들의 소방활동과 청사운영, 법적분쟁 등에 한정해서 보면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많은 소방잡지가 각 지역별로 소방협회 또는 소방본부의 지원을 받은 사업법인이 발행 및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소방잡지가 각 지역별 소방협회에서 지역 소방대에 관련 정보와 소식을 알리기 정기적으로 발행하던 협회보에서 시작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소방신문의 형태로 발행된 것은 18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최초의 소방잡지는 Brandschutz로 1947년에 창간되었고, 프랑스의 경우 최초 소방잡지는 파리의 Allo18로 1948년에 창간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1945년에 처음 발행이 된 바 있다고 하는데 여하튼 소방잡지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모든 주에서 소방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소방잡지도 있다. 또한 잡지판매에 있어 지역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방대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의 소방 소식과 정보가 많다는 이유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의 잡지를 우선해서 구독하고 있다고 한다.
그림 4에서 상단의 표지 5종은 각 주별로 발행되는 소방잡지의 몇 가지 사례를 보인 것으로 바이에른 주의 Brandwacht, 헤센 주의 Florian Hessen,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Brandhilf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Einsatz:nrw, 작센안할트 주의 Feuerwehren in Sachsen-Anhalt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앞서 소개한 파리소방의 Allo18처럼 많은 지역에서 소방본부별로 자체 소방잡지를 발행하고 있고, 오스트리아 역시 각주의 소방협회에서 자체 소방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주 단위보다 작은 지역단위(Landkreis, Stadtkreis)의 많은 소방협회에서도 자체적으로 소방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그림 4의 하단의 표지 5종은 이러한 작은 규모의 지역 소방협회에서 발행하고 있는 소방잡지의 예를 보인 것이다.
물론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두께도 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소방대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지역 소방대 소식을 알려주기 때문에 많은 대원들이 보고 있다.
2. 무료 구독
독일 남부지역 소방서에서 실습을 하고 있을 때 휴게공간에서 상업적으로 발행되는 유료 소방잡지들이 있어 보곤 했는데, 한 번은 함부르크 소방서에서 보냈다는 자체 발행 잡지를 하나 보게 되었다.
Löschblatt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던 이 잡지는 일종의 소식지로서 몇 개월에 한 번씩 발행하면서도 분량도 적고 내용이 단순해 보여 필자의 시각에서는 불필요하게 무리해서 잡지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는 상업적 유료 소방잡지에 버금갈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변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작은 지역의 소방협회나 소방서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소방잡지는 무료로 배부하고 있는데, 이를 인쇄물로 배부하는 것은 비용적인 면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에 보편화된 온라인 PDF 무료다운로드나 뷰어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소방잡지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 소방협회 주도로 매월 발행하고 있는 소방잡지의 상당수도 인쇄물은 유료판매가 되면서도 과월호는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PDF파일 다운로드나 뷰어서비스를 이용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 필자가 구독했던 소방잡지
독일(104만)과 프랑스(25만), 오스트리아(35만) 등에서 다수의 소방잡지가 발행되고 있는 것은 독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소방대원들의 수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월등히 많은 소방대원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에서 유료판매되는 소방잡지가 많은 것 같다. 여러 소방잡지 중에서 필자가 구독한 경험이 있고 추천할 만한 잡지에 대해 세부적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Feuerwehrmagazin
독일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은 소방잡지는 Feuerwehrmagazin이다. 1983년에 창간한 이 잡지는 현재 디지털 파일 4,000부를 포함해서 총 39,000부가 유료 판매되고 있다. 2011년부터 온라인을 통한 PDF파일로 구매가 가능하게 되어 외국에서 신간을 접하기가 수월해졌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신간에 나올 기사들을 맛보기 식으로 개요만 보여주면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잡지를 구독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한 과월호에 나왔던 특별 기획 기사는 따로 떼어내 별도 온라인 판매를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수년이 지난 재고 잡지까지도 특별할인가로 판매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것도 잘 팔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일 소방잡지에 많은 구독자가 있는 것은 소방에 있어 새롭고도 유익한 고급 정보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잡지가 추구하는 공통적인 것이겠지만,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스위스 소방관들도 사볼 만큼 특히 현장활동과 장비에 대한 다양한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대원폭행방지, 프랑스나 네덜란드의 소방의 독일소방과 비교, 방화복의 세탁관리 등이었다.
이 잡지의 인기 코너 중에는 각양각색의 독일 국내와 다른 나라의 소방대 소개가 있다. 특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티칸, 아랍에미레이트, 일본 도쿄 등은 직접 방문했던 사람의 견문록 형태로 기술되어 있어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많은 소방대에서 자신들의 소방대 소개 기사를 게재해 달라는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가 있는데, 필자가 기고 관련 문의에서 잡지게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왔을 때 편집부에서는 소방대 소개 등의 잡지 게재를 신청하는 글이 밀려서 항상 3개월 이상의 분량이 쌓여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2) Allo18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파리소방에서 발행하고 있는 소방잡지이다. 독일의 소방잡지와 달리 프랑스 소방은 구급활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급활동에 대해 다루는 분량도 적지 않다. 주로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처치하고 이송하는 과정과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몇 개월간 필자가 정기구독을 한 적이 있는데,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신청하여 우편으로 유료 구독할 수 있었다. 물론 필자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전문적인 잡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구입한 것은 잡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용을 이해하는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자체 여과방식의 4시간용 공기호흡기 장비소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궁금해서 해당 부분을 스캔하고 이메일에 첨부해서 자주 연락하고 지냈던 벨기에 소방관에게 보냈다.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아주 잘 구사했는데, 그의 도움으로 영어 번역본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프랑스어를 잘 이해하는 소방관이 있다면 이 소방잡지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홈페이지를 통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해서 비용부담이 없다는 점도 있지만, 파리소방여단(BSPP)에는 많은 박사급의 기술전문가와 의학전문가들이 있어서 소방대원들에게 맞춘 식사, 수면, 심리 등 다양한 지식을 전수하고 있고 다루는 주제들의 폭이 상당히 넓어 참고할 만한 것들이 많다.
일례로 출동많은 구급대원들이 식사를 제때 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문제와 이러한 문제를 하기 위해서 어떤 종류의 간식을 어떤 방법으로 먹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주는 기고문을 소속 소방의사가 게재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거는 소방사다리 탄생 200주년’이라는 기사가 있어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기사에서는 중세 다빈치라 불렸던 독일인 콘라트 키저의 저서에 효과적인 공성전의 장비제안으로 그려진 아이디어가 1824년에 파리소방대의 메니엘 대위에 의해 소방장비로 도입된 것이라고 한다.
그저 단순한 역사 얘기 같지만, 이것은 왜 다른 나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거는 사다리가 프랑스 소방에서 주력장비로 유독 많이 사용되고 있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3) 단골 방문 소방잡지 홈페이지
필자가 자주 방문하는 소방잡지 홈페이지는 앞서 언급한 Feuerwehrmagaziin을 비롯하여 독일의 Feuerwehr Retten-Löschen-Bergen(UB),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Fireworld.at(Brennenpunkt)이다. 다른 소방잡지 홈페이지에 비해서 제공되는 소식의 양이 많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 즐겨보고 있다.
UB 잡지는 다른 소방잡지에 비해 특히 소방관련 소송에 관한 소식을 자주 전하고 있다. 화재진압과정에서 파손된 차량의 보상에 관한 소송이나 출동 중 교통사고, 자택대기 근무 대원에 대한 소송의 판결 등이 인상적이었다. Brennenpunkt는 오스트리아 소방대의 현장활동과 훈련에 대한 소식이 상당히 많이 게재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소방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인근의 독일과 스위스의 현장활동 소식도 종종 전하고 있다.
구급잡지
프랑스의 경우를 제외하면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발행되는 소방잡지는 구급에 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소방에서 구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방에서 맡고 있는 구급활동이 전체적인 구급활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급에 관해서는 구급잡지가 따로 발행되고 있다.
독일에서 발행되고 있는 구급잡지 역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림 7에 3종을 소개했다. 이 가운데 Rettungsmagazin은 원래 Feuerwehrmagazin에서 소방과 구급을 함께 다루던 것을 구급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1995년 구급잡지로 분리시켜 창간된 것이다.
이 잡지는 소방에서 구급활동을 하는 대원들 외에도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에서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을 독자로 두고 있다. 소방잡지보다 훨씬 더 특화된 전문분야라 소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자층이 좁지만 구급잡지로는 인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은 15,000부가 발행되고 있고 소방잡지와 마찬가지로 다운로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결어
2005년 독일 소방관서 실습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중요한 고민을 한가지 하게 되었다. 실습기간 중 도와줬던 많은 소방대원들에게 어떻게 고마움의 뜻을 전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메일과 우편물 등으로 감사를 전하기는 했지만 뭔가 더 의미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은 소방대원들이 보고 있는 소방잡지에 기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방잡지사에 문의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뒤, 대략적으로 정해준 분량과 양식에 맞게 기고문을 보냈고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난생 처음 해외 소방잡지에 기고문을 내게 되었고, 이 소방잡지에는 최초로 한국 소방관의 기고가 실리게 되었다.
독일 소방잡지에 기고문을 낸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이 기고문은 2006년 2월호에 실렸다. 그 다음 달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필자가 첫 관서실습을 했던 슈투트가르트 소방서 제2안전센터를 가게 되었다.
다들 월드컵 대회 준비로 바빴지만 우리 부부를 반겨주었는데 다들 필자의 기고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한 대원은 잡지를 가져와 펼치며 필자의 기고문에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그리고 일몰 이후 외부 여성이 청사에 머물지 못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안전센터 대원들의 협조로 청사의 손님방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하나의 단적인 사례였지만, 유럽의 소방잡지의 활용은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최신 장비와 기술이 소방잡지를 통해 소개되고 많은 장비업체들이 홍보의 수단으로 소방대원들이 많이 보는 소방잡지 광고를 활용하고 있다. 또한 소방차 통행문제, 법적분쟁, 정책적 변화, 의용소방대의 소멸 등 행정이나 제도적인 면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부분들이 많다.
종종 국내의 소방장비 개발업체에서 개발 중인 장비가 독일 등 유럽에서 통할 수 있는가를 문의하는 경우가 있는 데, 소방산업 분야의 종사자들 역시 유럽의 소방잡지를 보면 장비의 개발이나 시장개척의 전략에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방업무분야나 소방시설에 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음을 유의해야 하며, 정보취득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언어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4년 6월3일
조현국 화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