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의 르노 사에서는 그간 특허로 보유하고 있던 전기차 화재 시 소방대의 화재진압을 용이하게 하는 차량제조기술을 타사에서 무료사용이 가능하도록 풀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향후 전기차 화재진압에 있어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소방의 고민이 크게 해소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반향은 아직 크지 않아 보인다.

그림 1. 르노 전기차량 모델의 구조시트에 표시된 Fireman Access
그림 1. 르노 전기차량 모델의 구조시트에 표시된 Fireman Access

1. 도대체 무슨 기술이길래

지난 2월 중순, 국내의 몇몇 인터넷 언론과 블로그 등에서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인 르노에서 전기차 화재진압 신기술을 공개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수 시간씩 걸리는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를 10분 안에 진압할 수 있고 사용하는 소화수도 수백리터로 줄일 수 있다고 하면서, 이젠 전기차 화재도 다른 내연기관 차량의 화재처럼 수월하게 진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획기적인 기술에 대한 보도임에도 메이저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고 후속보도 없이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아 그 기술의 실체나 유용성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인 궁금증에서 필자가 해외 인터넷을 통해 관련 내용을 알아보고 나름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해 보았다.

르노자동차가 이번에 발표한 기술은 소방대의 화재진압 기술이라기보다는 화재진압을 용이하게 하는 자동차 제조기술의 일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전기차의 리튬이온배터리 화재진압 방법은 배터리 부위를 대상으로 다량의 물을 방수하거나 수조 안에 담그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배터리 팩을 사고로 인한 충격에서도 잘 보호하기 위해 강력하고 촘촘한 케이스가 감싸고 있어 직접적인 냉각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봄베의 공기압으로 찌르거나 수압을 이용한 드릴로 절삭하여 배터리 케이스에 구멍을 내어 방수하는 방법이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직접적인 냉각이 가능하여 작업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르노에서 발표한 기술도 이런 최근에 등장한 기술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케이스 내부에 직접 물을 넣어서 침수를 시키는 방식이지만, 소방대원들이 장비를 이용해 구멍을 뚫거나 다른 사전작업을 하지 않고도 소화수 주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면서 간편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2. Fireman Access

르노 사는 이 기술을 “Fireman Access”라고 명명하였다. 여러 나라로 판매가 되기 때문인지 몰라도 프랑스어로 따로 명칭을 만들지 않고 영어식 명칭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르노전기차에 적용된 Fireman Access(내부에 원형 밀봉디스크 보임)
그림 2. 르노전기차에 적용된 Fireman Access(내부에 원형 밀봉디스크 보임)

글자 그대로 소방대원이 전기차 화재진압을 할 때 접근해서 불을 끌 때 이용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담이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의 기업이 최근의 추세와 달리 양성이 아닌 단성의 단어로 기술명칭을 만들었다는 점이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3, 배터리 케이스 개구부 밀봉 디스크
그림 3, 배터리 케이스 개구부 밀봉 디스크

Fireman Access에는 르노의 전기차에 제조에는 특별한 기술이 적용되는데, 배터리 케이스에 구멍을 내고 밀봉용 디스크 판을 부착시켰다. 이 디스크 판은 평시에는 방수기능이 있어 배터리에 수분이나 이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보호하지만 화재발생 시에는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높은 수압의 물로 타격하면 파괴되어 배터리 케이스 안으로 물이 들어올 수 있게 허용한다.

그림 4. 화재발생 전기차에 Fireman Access 이용 방수주입
그림 4. 화재발생 전기차에 Fireman Access 이용 방수주입

전기차 화재 시 소방대원은 대부분 차량의 뒷좌석 바닥에서 Fireman Access의 개구부를 통해 안쪽에 있는 배터리팩 밀봉 디스크에 관창으로 고압방수를 하면 밀봉디스크가 파괴되면서 배터리 팩 안쪽에 빠르게 소화수를 넣어 직접 냉각을 할 수 있다.

3. 2013년에 이미 개발된 기술

르노 사에서는 도로에서의 차량사고 시 구조 및 화재진압 기술의 발전과 사고로부터 안전한 차량설계를 위해 프랑스의 소방과 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Fireman Access 기술도 2011년부터 이블린 소방본부와의 협업 과정을 통해 이미 2013년에 개발한 기술이었다. 당시 3대의 시제품으로 화재실험을 했는데, 불을 붙인 뒤 30분 뒤 소방대가 화재진압을 실시하여 10분 만에 진화를 완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실험결과를 토대로 10분 안에 진화가 가능하다는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첫 기술개발 당시 배터리팩 밀봉디스크는 열에 의해 녹아서 제거되는 방식이었지만, 이후에 지금과 같이 소방대의 관창에서 방수되는 물의 압력에 의해서 제거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그림 5. 전기차 뒷좌석에서 Fireman Access를 가리키는 소방관-출처 : SDIS78
그림 5. 전기차 뒷좌석에서 Fireman Access를 가리키는 소방관-출처 : SDIS78

또한, 이 기술은 르노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와 플러그앤하이브리드 차량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새롭게 개발된 기술은 아니다. 그동안은 특정 제조사의 일부 차량에만 설치되어 실제 전기차 화재현장에서 이 기술의 혜택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아 소방대원들 입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르노 사의 기술에 관한 발표에서 중요한 대목은 이것이 자동차 제조기술의 하나로 특허를 받은 것으로 자사 차량에만 사용해 오던 것을 타사에 무상 라이센스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무상 라이센스를 받겠다는 기업들이 나서서 이 기술을 전기차 설계에 적용하게 된다면 에어백이나 ABS처럼 화재안전장치의 표준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많은 기업의 많은 차량에 이 기술이 적용된다면 전기차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소방대원들에게 표준화된 화재진압 작업이 가능하고 빠른 화재진압으로 연소확대로 인한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변 소화전을 이용한 자체 초기화재진압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4. 기대와 우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에 소개된 전기차 화재진압 관련 기술이 우리 사회에 앞으로 가져올 파급력에 비하면 언론의 관심이 신통치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독일 등 유럽에서도 아직은 이번 르노 사의 발표에 대한 반응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진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소방이 그러하다. 

사실, 2013년도에 개발된 기술이었고 이미 특정 기업의 전기차에 적용되는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필자는 그동안 전기차 화재진압과 관련하여 유럽의 여러 소방언론기사를 접하면서도 이러한 기술이 언급된 것을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한 두 건이라도 이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의 화재 시 소방관들이 진압이 매우 수월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면 이미 많은 관심을 받고 큰 이슈가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필자 개인적으로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또한 이 기술이 화재진압의 기술이기 보다는 차량 제조상의 기술로 소방에서 관여하는 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에 대해 어떤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가가 향후 전기차 화재진압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현국 춘천소방서 대응총괄과장
조현국 춘천소방서 대응총괄과장

최근 들어 전기차는 화재 시 불이 잘 꺼지지 않아 주변에 많은 피해를 초래하는 위험한 차량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부에서 범죄차량처럼 취급받기도 한다. 이러한 전기차에 대한 두려움과 외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기차도 휘발유 차량처럼 불나면 쉽게 꺼지고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기차 자체에서 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으면서 소방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고 각 관련시설에서 안전시설을 보강하기 위해 비용부담을 하고 있는 반면, 전기차의 설계상의 안전강화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재진압에 용이한 전기차를 설계하는 데 있어 제조사의 관심과 노력은 궁극적으로는 고객에 대한 본질적인 서비스가 되어 기업의 전기차 사업도 살고 국민과 소방의 짐을 덜어주는 길이 될 것이다.

2025년 3월11일

조현국 춘천소방서 대응총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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